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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미셸 푸코, 1926~1984' 행동하는 지성 푸코 한 번 틀어지면 뒤끝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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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미셸 푸코, 1926~1984' 행동하는 지성 푸코 한 번 틀어지면 뒤끝 있었다

입력
2012.02.17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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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 1926~1984/디디에 에리봉 지음·박정자 옮김/그린비 발행·640쪽·2만5,000원

꽤 난해하다는 책도 출간된 시대나 작가의 여정을 알고 나면 이해되는 경우가 있다. 비슷한 조류의 작품을 읽었다면 이해는 더 쉬워진다. 해외 저자들의 이론서나 소설이 국내에 소개될 때 번역가들이 해제를 붙이는 것은 이 때문인데, 번역투 문체와 개념어 남발 탓에 오히려 이 해제들이 더 어려울 때가 많다. 출판사 그린비의 인물 시리즈 'he-story'는 전문가들의 해제보다 더 쉽고 친절하게, 유명 저자들의 삶과 주요 저작을 소개한다. 첫 책은 역사학자 디디에 에리봉의 <미셸 푸코: 1926~1984> 다. 초판이 1989년 프랑스에서 발간돼 국내에도 95년 소개됐는데, 이번 책은 지난해 프랑스에서 나온 개정증보판을 번역한 것이다.

프랑스 신문 리베라시옹,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 등의 기자로 활동하며 푸코와 직접 교류했던 저자는 푸코와 가깝게 지낸 지인들과의 인터뷰, 푸코의 저서 등을 토대로 인간 푸코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일화들을 읽다 보면 푸코가 꽤나 예민하고 뒤끝 있는 인물이고, 그 성정이 학문적 작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데리다와의 일화는 푸코가 상황에 따라 절친과 원수 사이를 오갔음을 보여준다. 데리다는 1963년 특강을 준비 하며 푸코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당시 둘 다 무명의 학자였는데 푸코는 데리다를 "완벽한 후설 연구자"라며 격려했다. 한동안 절친 사이였던 이들은 잡지 <크리티크> 의 편집위원으로 함께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잡지에 푸코를 비판한 제라르 그라넬의 비평이 투고되면서 관계가 어그러졌다. 데리다가 이 글을 싣지 말라는 푸코의 부탁을 거절한 채 기고문을 게재한 것이다. 이후 푸코는 데리다의 저서들을 비판한 다양한 기고문을 각종 잡지에 실었다. 1981년 데리다가 체코에서 마약밀매 혐의로 체포됐을 때 푸코가 구명운동에 나서며 관계가 복원되는 듯했으나, 둘은 다시 어긋난다. 데리다가 국제철학학교 창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들뢰즈와 푸코를 소외시키자 푸코는 특유의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며 데리다의 글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책은 이런 일화들을 3부로 나누어 소개한다. 1부는 푸코의 어린 시절과 고등사범학교 입학에 실패해 좌절하는 시기, 파리 아방가르드 그룹과 관계를 맺으며 학계에 자리잡는 과정을 소개한다.

2부는 그가 무명의 작가에서 대가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그의 저서들이 프랑스와 유럽 지식인 사회에서 소비되는 과정과 이에 대한 푸코의 반응을 당시 인터뷰, 기고문 등을 통해 소개하면서 각 저서들의 내용을 요약, 설명한다. 예컨대 성에 관한 담론에서 오히려 통제를 바라보았던 푸코의 <성의 역사> 는 마르크시즘 지식인 계열에서 반발을 일으킨 것은 물론이고 라캉 정신분석학파와 푸코가 결별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이 지배하던 당시 학계를 비판하기 위해 쓴 <말과 사물> 은 사르트르의 거센 비판을 받았고, 스승 알튀세르와 학문적으로 멀어지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3부는 푸코의 콜레주 드 프랑스 시절이다. 1976년 <성의 역사> 1권을 출간한 이후 8년 간 푸코는 책을 쓰지 않았다. 이후 연구 주제, 시기, 방법론이 완연히 달라진 <성의 역사> 2,3권을 연달아 냈다. 이 책들을 비롯해 푸코 후기, 그의 사유를 집대성한 '통치성' 개념은 최근 신자유주의 시대의 양상과 폐해를 정확히 예견하고 있다. 그가 주디스 버틀러, 조르조 아감벤, 로베르 카스텔 같은 현대 철학자들의 사유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3부는 이 8년의 시기를 집중적으로 그리며 교환교수 자격으로 미국에 갔을 때 체험한 동성애 문화에 열광, 에이즈에 걸린 이후 삶을 정리하는 궤적을 추적한다.

먹고 살기 바쁜 대중이 눈 뜨면 책 읽고 글 쓰는 학자들처럼 정확하고 세밀한 사유를 하지는 못할 터. 책은 푸코의 삶을 소개하며 독자들이 난해한 저작들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단 이 저자, 푸코에 대해 아는 게 너무 많다 보니 수다가 지나치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들기에는 부담스럽게 두껍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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