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폭력과 시민다움' 신자유주의, 또 다른 이름의 폭력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폭력과 시민다움' 신자유주의, 또 다른 이름의 폭력

입력
2012.02.17 12:33
0 0

폭력과 시민다움/에티엔 발리바르 지음·진태원 옮김/난장 발행·224쪽·1만2,800원

에티엔 발리바르는 1980년대부터 국내 마르크스주의 논쟁의 중심에 선 프랑스 철학자다. 알튀세르, 조르주 캉킬렘, 라캉 등을 사사했고, 1965년 알튀세르, 마슈레, 랑시에르 등과 함께 <자본을 읽자> 를 쓰며 세계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부상하지만, 이후 <역사유물론 연구> <민주주의와 독재> 등 일련의 저작을 통해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종언을 선언한다. 국내 좌파 지식인들에게 그가 변절자로 비판받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작이 선별적으로 읽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발리바르의 학문적 독창성 중 하나가 폭력에 관한 사유다. 그는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혁명을 추구하는 정치가 기존 권력구도를 무너뜨리는 해방적 성격을 강조하면 할수록 자신들의 폭력에 대해 관대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해방의 정치는 억압과 배제의 정치로 전도되기 쉽다고 지적한다. 그가 폭력에 주목한 것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 불거진 폭력의 일상화 때문이다.

발리바르는 고전적 의미에서의 폭력(물리력의 행사)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개인의 개성을 가능케 했던 사회, 물질적 조건을 박탈하며 '자기 자신이 상품 자체인 존재'로 전환시켰다고 비판하며 신자유주의 메커니즘을 새로운 폭력의 형태로 규정한다. 그가 보기에 신자유주의에 의한 폭력이야말로 정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다. 정치적 주체의 출현 자체를 막기 때문이다. 발리바르는 이 폭력을 제거, 감축하는 해법을 모색하자는 이른바 '반폭력의 정치'를 주창한다.

신간 <폭력과 시민다움> 은 반폭력의 정치 개념을 정교하게 설명한 두 편의 논문, '게발트'(2001)과 '폭력과 시민다움'(2003)을 옮긴 책이다.

'게발트'에서 그는 불법적 폭력과 정당화된 권력을 동시에 뜻하는 독일어 단어 게발트(Gewalt)에 주목한다. 지금까지 철학계 모든 폭력론이 게발트의 두 측면, 즉 기존 사회 권력을 지키려는 정당화된 폭력(권력)과 이 권력구도를 깨뜨리려는 불법적 폭력의 이율배반 사이에서 동요해왔다고 지적한다. 그는 우리가 폭력을 근절할 수도, 길들일 수도 없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의 정치와 폭력의 메커니즘을 개조하거나 변혁하는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하자고 말한다.

'폭력과 시민다움'은 기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폭력론과 비폭력주의자들의 폭력론을 비판하며 자신의 논리를 구체화시킨 논문이다.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는 지배 세력의 구조적 폭력에 맞서는 피지배자들의 폭력적인 저항은 정당하며 특히 자본주의적 폭력에 맞서는 노동자의 대항 폭력은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비폭력주의자들의 관점은 폭력을 악의 구현물과 동일하게 다루며 어떤 목적을 위한 폭력이든 폭력 자체를 금기시한다. 발리바르는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마르크스주의의 폭력론이 마르크스주의를 역사적 몰락으로 이끈 궁극적 원인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폭력은 역사의 동력 중 하나'이며 '고유한 창조성'을 지닌다며 비폭력주의자들의 폭력론에도 이견을 보낸다. 다만, 간디의 비폭력운동의 경우 제국주의 지배와 폭력에 맞선 정치투쟁의 한 형태를 이룬다는 점에서 시민다움의 한 전략으로 독자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괄호와 삽입구가 많은 긴 문장은 발리바르의 복잡다단한 사고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듯하다. 다행이라면 <우리 유럽의 시민들?> <정치체에 대한 권리> 등 발리바르의 저서를 다수 번역한 진태원씨가 옮겨 독자들이 발리바르의 맥락과 사유를 비교적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