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눈/플로리안 하이네 지음ㆍ정연진 옮김/예경 발행ㆍ344쪽ㆍ1만9800원
불빛을 머금은 황금색의 평온한 호숫가와 주먹만한 별빛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림 속 풍경에 대한 궁금증은 인지상정인지, 프랑스 남부 아를에는 황홀한 고흐의 붓자국을 찾아 나선 관광객들이 북적인다. "이놈의 도시는 낡고 더럽다. (중략) 모든 것이 병들고 창백한 느낌이다." 고흐가 아를의 첫 인상에 이렇게 혹평한 것을 보면 고흐가 아를을 재현했다기보다 오히려 아를이 점점 더 고흐의 그림을 닮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화가는 어떤 눈을 가졌기에 우리랑 다른 세상을 보는가." 명작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의문이다. 독일의 미술사가이자 사진작가인 플로리안 하이네는 이 오랜 질문의 답을 얻고자 고흐를 비롯해 벨라스케스, 베르메르, 고야, 프리드리히, 카유보트, 쇠라, 모네, 뭉크 등 22명의 화가들이 담아낸 풍경을 직접 찾아다녔다.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노르웨이 등 유럽 곳곳을 여행해서 탄생한 <화가의 눈> 은 결국 화가 저마다의 관점과 관찰력에서 비롯된 화풍을 재구성한 책이다. 화가의>
초기 르네상스 시대만 해도 화가가 그림에 관점을 담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다. 독일 최초로 인쇄된 독일 지도와 주요 도시의 조감도를 수록한 쉐델의 '뉘른베르크 연대기'가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 성과 마을이 빽빽하게 그려진 시에나의 조감도는 재미있게도 오스트리아, 독일, 스페인 등 지방의 조감도와 똑같다. 이 시대가 여전히 사실성보다 상징성에 무게중심을 둔 중세의 시각이 걷히지 않은 상태였음을 보여준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캔버스에 담아낸 모네, 작은 점을 찍어 풍경을 완성한 쇠라, 여러 장소의 풍경을 짜깁기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 프리드리히, 원통으로 나무를 세모로 집을 표현했던 큐비즘 거장 브라크 등의 작품을 현재의 현장 사진과 함께 배치했다. 벨라스케스의 '로마 메디치 빌라의 정원'처럼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도 있지만 라위스달의 '베이크의 풍차'처럼 풍차가 철거돼 희미한 흔적만 남은 곳도 있다.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비교, 당대의 화풍과 작가의 관점을 고루 읽을 수 있다.
색채 사용에서도 화가의 개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건초마차'로 유명한 영국의 풍경화가 존 컨스터블은 실제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 작품을 남겼다. 그는 나뭇잎을 칠할 때조차 기존의 녹색만 사용하지 않고 수많은 색을 조합해 다른 풍경화 혹은 실제 풍경보다 극적인 화면을 구성해냈다.
화가들이 공들여 캔버스에 담은 장소를 현재 사진으로 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편지나 당대 평가를 통해 그들이 그림을 완성하며 느낀 좌절과 고통, 기쁨을 엿듣는 재미도 있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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