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전자업계를 강타할 최대 이슈가 될 겁니다."
16일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가 마련한 분쟁 광물 규제 대응방안 세미나에 참석한 A대기업 관계자는 "미국의 분쟁 광물 규제조치가 예상외의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이 6월부터 분쟁지역 채굴광물을 제품에 쓰지 못하도록 한 건 이 광물로 팔아 벌어들인 돈이 반군들의 무기구입대금이나 테러자금 등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규제되는 분쟁국가는 콩고 수단 우간다 르완다 브룬디 탄자니아 잠비아 앙골라 중앙아프리키공화국 등 종족간 내전을 겪는 아프리카 9개국. 규제대상 광물은 주석 탄탈 텅스텐 금 등 4개로 한결같이 반도체 배터리 LCD 엔진 전극 등 전자제품과 산업용 기기에 꼭 필요한 성분이다. 이중 가장 민감한 광물은 반도체 배터리 등에 들어가는 탄탈로, 콩고와 르완다가 세계 3,4위 생산국 지위를 점하고 있다.
분쟁지역 광물 사용금지조치가 시작되면 반도체 LCD 배터리 전기부품 등을 미국 기업에 수출하는 국내 기업들은 광물 사용 현황을 반드시 알려줘야 한다. 반도체 LCD 배터리 등을 생산하는 삼성전자 하이닉스반도체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유력 대기업들이 다 여기에 해당한다. 미국 상장기업들은 광물 원산지를 표시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만약 부품 제조사들이 원산지를 알려주지 않으면 거래를 끊을 가능성이 높다.
A사 관계자는 "25개 미국기업들이 벌써부터 국내 부품 공급사들에게 광물사용 현황을 요청하고 있다"며 "유럽도 비정부기구(NGO) 중심으로 분쟁 광물 규제 움직임이 강력하게 진행돼 이미 세계적 이슈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광물의 이력추적이 되지 않아, 어느 지역에서 채굴된 광물인지 여부를 확인키 어렵다는 점. B사 관계자는 "광물 중개상들의 원산지 세탁이 워낙 심해 분쟁 광물이 국내에서 얼마나 쓰이는 지 알 방법도 없고, 만일 안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단언했다.
워낙 급한 발등의 불이 되다 보니 국내 대기업들도 나름 대책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의 경우 다른 글로벌 기업들처럼 미국 공공 및 민간협의회(PPA)에서 진행하는 광산인증프로그램과 세계전자산업시민연대(EICC)에서 인증한 분쟁광물 미사용 제련소에서 나오는 광물만 사용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EICC에서 인증한 분쟁광물 미사용 제련소는 중국 F&X, 미국 엑소테크, 일본 미츠이, 러시아 솔리캄스크 등 총 10군데. LG전자도 EICC와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PPA와 EICC의 인증을 받은 광산과 제련소만 사용할 경우 필요량을 채우기 힘들다는 것이다. 만약 이번 규제로 전세계 부품사들의 수요가 이들 '깨끗한' 광산과 제련소로 몰릴 경우 물량확보 차질에 가격폭등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 차원의 대책은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업계의 힘으로는 풀기 힘든 상황인데도 관계 부처에서는 사태의 심각성 조차 모르고 있다"며 "제2의 희토류 파동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