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성공 가능성, 20%라더군요.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했어요. 내 딸을 이렇게 살게 할 순 없었으니까요."
선천성 희귀병으로 음식을 거의 못 먹고 6년 넘게 영양주사로 생명을 이어온 일곱살배기 딸을 수술실로 들여보내던 날, 김영아(33)씨는 마지막이란 말을 떠올렸다. 뱃속 장기 7개를 모두 이식 받는 대수술. 9년 같은 9시간이 지났다. 천만다행으로 모녀는 다시 만났다.
"이제는 요 녀석이 반찬투정을 하네요. 티격태격하다가도 먹을 수 있는데 안 먹겠다고 하는 게 못내 안쓰러워져요."
김씨의 딸 조은서양은 지난해 10월 간과 췌장, 소장, 위, 십이지장, 대장, 비장을 한꺼번에 이식 받았다. 조양의 수술을 담당한 서울아산병원은 "7개 장기 동시 이식은 국내 처음이고, 외국에서도 매우 드문 사례"라며 "조양은 수술 한 달째부터 영양주사를 끊고 식사로만 영양섭취를 하는 등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고 16일 밝혔다.
조양의 몸에 이상이 나타난 건 엄마 뱃속에서부터였다. 태아의 배가 빵빵하게 불러 있었다. 물혹일지 모르니 병원에서 좀더 지켜보자 했는데 조양은 2005년 미숙아로 태어나버렸다. 불렀던 배는 방광 때문이었다. 아기 방광이 어른만했다. 2시간마다 방광을 일부러 자극시켜 소변을 빼줘야 했다. 그걸 반복하다 혼자 소변을 볼 수 있게 되니 이번엔 대변이 안 나왔다. 그 조그만 아기가 매일 약을 먹고 관장하는 걸 지켜보는 엄마 마음은 무너졌다.
조양의 병명은 만성 장 가성 폐색 증후군(이하 만성장폐색증후군). 위가 꼬이고 장이 움직이지 않아 소화도 배설도 제대로 못 하는 희귀병이다. 음식을 먹어도 다 토해버리고 열량의 30% 정도 밖에는 흡수하지 못한다. 조양은 네 살도 되기 전 꼬인 위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수술을, 이어 대장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지만 병은 계속 심해졌다.
급기야 소화기계 주요 장기가 거의 기능을 하지 못해 영양주사로 겨우 생명을 이어가는 고통스런 투병생활을 해야 했다. 김씨는 "힘든 치료를 받고 나면 종종 아이가 '내가 오늘 엄마 힘들게 했지' 하고 오히려 날 위로했다"며 "통원과 입원만 반복하며 살다 보니 아이가 또래 같지 않고 말을 어른처럼 한다"며 마음 아파했다.
현재 알려진 만성장폐색증후군의 1년 생존율은 87%, 4년 생존율은 70%다. 전국에 환자가 10명 안팎뿐이고, 장기이식이 유일한 완치방법이다. 조양의 주치의인 김대연 소아외과 교수팀은 2년 전부터 조양을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등록하고 다(多)장기이식을 준비해왔다.
행운이 따랐다. 조양과 비슷한 나이의 뇌사자를 찾은 것이다. 간이식및간담도외과 김기훈 교수가 직접 뇌사자의 장기를 적출해왔고, 투병기간 동안 많이 손상된 조양의 장기들을 하나씩 떼어내고 기다리고 있던 김대연 교수가 차례로 이식을 진행했다.
"조마조마했지요. 뱃속 거의 모든 장기가 싹 없어졌다 새로 들어가는 거니까요. 장기를 넣을 때마다 피를 비롯한 체액이 갑자기 밀려들어가면 쇼크나 심장정지 상황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거든요. 장기 하나 넣는 보통 이식수술보다 출혈도 훨씬 많아요."(김대연 교수)
조양의 작은 몸은 힘든 수술을 의료진의 기대보다 더 잘 견뎌냈다. 12시간 예상했던 수술이 3시간이나 단축됐다. 김대연 교수는 "비슷한 장기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했으니 만약 수술이 잘 안 됐다면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술 후 9일째부터 조양은 위로 관을 넣어 음식을 섭취했고, 20일째부터는 입으로 죽을 먹기 시작했다. 곧 퇴원할 수 있을 걸로 의료진은 예상한다. 의사가 되고 싶다던 조양은 이제 꿈이 바뀌었다. 새 꿈은 요리사다. 세상에 맛있는 게 참 많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김씨도 요즘 꿈이 생겼다.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딸과 나란히 앉아 먹는 꿈 말이다. 첫 메뉴는 이미 정했다. 딸이 가장 먹고 싶다던 닭백숙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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