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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어느 시인의 평화로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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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어느 시인의 평화로운 죽음

입력
2012.02.15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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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봐 쉼보르스카가 1일 향년 88세로 타계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시인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제법 알려져 있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두 번은 없다> ) 같은 구절은 많은 이들의 귀에 익숙할 것이다. 시인의 사망 소식은 한국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몇몇 신문의 단신을 접한 사람들이 전한 입소문으로 그녀의 사망 소식은 뒤늦게 내게 도착했다.

내가 쉼보르스카의 시를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쉼보르스카와 나 사이에는 각별한 인연이 있다. 아니 그렇다고 혼자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마치 같은 성에 같은 돌림자라도 쓰는 양 나는 쉼보르스카를 '심보르스카'라고 부르곤 했다. 한 번은 친구가 '심보르스카'의 애독자라는 사실을 알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의 '폴란드 고모님'을 좋아한다니 무척 반갑네." 내 썰렁한 농담으로 둘 사이에 잠깐 어색한 침묵이 흘렀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내 쉼보르스카이건 심보르스카이건 상관없이 그녀의 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쉼보르스카가 노벨상을 받지 않았다면 그녀의 타계 소식은 한국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정은 폴란드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쉼보르스카의 팬인 내 친구는 폴란드 여행 중에 시인의 고향인 쿠르니크를 방문해 마을 사람들에게 "쉼보르스카를 아시나요?"라고 물었는데 아쉽게도 그녀를 아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날 수 없었다. 선량한 내 친구는 자신의 형편없는 발음이 문제였을 거라고 자책했지만 정작 쉼보르스카 자신은 달리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녀는 <어떤 사람들은 시를 좋아한다> 라는 시에서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과/시인 자신들을 제외하고 나면/아마 천 명 가운데 두 명 정도에 불과할 듯'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유명 시인'의 '유명'이라는 말은 배우나 가수에 붙는 '유명'에 비하면 지극히 사소한 것이다. 노벨상이나 무슨 문학상들이 시인의 유명세를 연예인 급으로 부풀릴 때도 있지만 그리 되면 오히려 시인들이 부담스러워한다. 쉼보르스카는 노벨상을 수상하고 쏟아진 언론의 집중 조명을 피해 폴란드의 옛수도 크라쿠프에 머물며 은둔 생활과 창작을 이어갔다. 그녀는 1931년 고향을 떠나 크라쿠프에 정착한 후 계속 그곳에 살았다.

나는 시인이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셸리는 "아무도 창조자의 이름에 값하지 못한다. 신과 시인 이외에는"이라 말했지만 쉼보르스카는 노벨상 수상소감에서 셸리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듯 말했다. "영감이란 일반적으로 예술가 혹은 시인들만의 특권은 아닙니다. 영감의 수혜자들은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며, 과거에도 있었고 또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뚜렷한 신념으로 자신의 일을 선택하고, 애정과 상상력을 가지고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 말이죠. 이 세상에 그런 의사들은 늘 있어왔고, 그런 교사들, 그런 정원사들은 항상 존재해왔습니다." 행복한 의사, 행복한 교사, 행복한 정원사는 행복한 시인의 동료다. 그들은 일에 전념하며 자신의 삶을 창조하고 타인과 교감하는 사람들이다. 시대가 불행할 때 시인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시인이 시대의 진리를 증언해서가 아니다. 시인은 불행한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다시 돌아가야 할, 삶과 노동에 잠재한 행복의 형상을 밝히는 자다. 그렇기에 나는 시인은 진리가 아니라 행복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믿는다.

"쉼보르스카는 크라쿠프의 자택에서 편안히 잠들었다"고 언론은 전했다. 그녀가 미소를 띠고 눈을 감고 있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 표정은 시인에게 마지막 남은 한줌의 영감이 손에서 얼굴로 옮아와 최후의 작업을 한 결과이다. 그리고 그 표정은 행복하게 살다 간 다른 인간들의 표정과 하등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 시대에 그런 표정은 얼마나 드문가! 늦었지만 시인에게 조의를 표한다. 고이 잠드세요, 나의 폴란드 고모님.

심보선 시인 ·경희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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