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저축은행 피해자 지원 특별법 처리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릴 예정이던 국회 법제사법위 전체회의가 결국 무기 연기됐다. 국회 본청 406호 법사위 회의장엔 '공직선거법 통과 직후 개회토록 하겠다'는 안내문만 붙어 있었다. 총선 표를 의식해 위헌 소지를 뻔히 알면서도 예금보호제도 근간을 무너뜨렸다는 거센 비판론이 제기된 게 결정적 무산 이유였다. 이런 와중에 여야 원내지도부는 "상임위서 판단할 일" "여당 입장이 중요하다" 등의 말만 하면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게다가 '당의 최고지도자이자 얼굴'인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가타부타 지침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정무위에서 저축은행법이 통과된 시점이 9일이니 1주일 간 말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여야의 두 당수는 15일 라디오 대표연설과 대국민 기자회견에서도 저축은행의 '저'자도 꺼내지 않았다.
박 위원장은 요즘 정국에서 최대의 논란거리로 등장한 저축은행 특별법에 대해 전혀 공개적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같이 침묵하는 게 박 위원장이 말하는 소신과 원칙의 정치인지 묻고 싶다.
한 대표도 이날 기자들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법체계상으론 맞지 않다고 본다"면서도 "핵심은 이명박정부의 잘못"이라며 책임을 돌렸다. 하지만 전ㆍ현정부 책임론과는 별개로 입법권을 가진 의원들을 지휘하는 야당 대표라면 구체적인 입법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입법 사안은 원내지도부의 영역이라는 항변도 가능하다. 형식론적으론 그렇다. 하지만 원내지도부가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당을 이끌어가는 두 사람이 가닥을 잡아줄 필요가 있다. 당헌에도 각각 '대표는 법적ㆍ대외적으로 당을 대표한다' '당을 대표하고 당무를 통할한다'고 명시돼 있다. 무엇보다 정치인이라면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른 공과에 대해 평가 받고 책임을 지는 게 원칙이다. 따라서 이날 "(현 정부는 각종 책임에 대해) 모른 척 아닌 척 숨지 말라" 는 한 대표의 경고는 두 당수에게도 적용된다고 본다.
두 사람이 각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현정부의 측근 비리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도 비교된다. 두 사안은 공교롭게도 보수표와 야당표 결집에 효과가 있다. 저축은행법은 다르다. 통과시키자니 포퓰리즘 역풍을 맞을 각오를 해야 하고, 무시하면 격전지로 부상한 부산 민심이 걸린다. 때문에 두 사람이 '계륵' 같은 저축은행법에 대해서 유독 '부작위의 정치'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지도자의 리더십에 대해 "결정을 내릴 때 최선의 선택은 현명한 결정을 하는 것이고, 최악의 선택은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는 말을 남겼다. 헌정 사상 첫 여성 당수 시대를 연 두 사람이 새겨봐야 할 말이다.
장재용 정치부 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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