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는 일본이 16세기부터 유럽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창구였을 정도로 대표적인 무역항이었다. 이곳은 무역과 관련한 범죄가 빈번한 지역이었는데 나가사키에서 발생한 범죄사건들을 기록한 에 따르면 조선을 상대로 한 대규모 무기 밀거래 사건이 있었다.
1667년 일본을 뒤흔든 이 밀거래는 나가사키뿐만 아니라 후쿠오카, 쓰시마 등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있었으며 밀수품의 수량 또한 방대해 17세기 최대 규모 밀매 사건으로 기록된다. 일본은 주모자 이토 고자에몬을 포함해 40명 이상을 참형에 처했다. 조선과 일본을 떠들썩하게 한 무역 범죄사건을 16일 밤 10시 방송하는 KBS 1TV '역사스페셜'이 파헤친다.
세계 열강들이 무역거점 확보에 열을 올리던 17세기, 일본은 국제적 분쟁을 우려해 자국의 무기 수출을 금지했다. 에도 막부의 엄격한 통제 속에서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형성된 거대 밀매조직은 조선을 상대로 무기를 거래했다. 이를 적발한 에도 막부는 밀거래 주모자들을 유례 없는 극형에 처하고 이후 무기 밀거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조선과 일본의 밀거래에 종지부를 찍었다.
실록에 따르면 조선 중기 최고 의결기관인 비변사는 역관을 시켜 쓰시마에서 조총과 유황을 밀수했으며, 조정은 훈련도감을 통해 상인들에게 무기밀수를 알선하도록 지시했다. 조선은 당시 국가적 차원의 밀거래를 할 필요가 있었다. 임진왜란에서 일본군 조총의 위력을 경험한 뒤 조총부대를 창설하고 총기 개량에 돌입하는 등 군비 확충에 몰두했다. 문제는 화약 제조에 필수적인 유황이었다. 유황 광산이 개발되지 않아 일본에서 수입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무기류 밀수에서 유황 광산 개발까지 강대국들 틈에서 자주 국방을 달성하고자 했던 17세기 조선의 노력을 들여다본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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