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를 휴학한 박모(28)씨는 지난해 초 컴퓨터 6대와 외장하드디스크 등을 구입해 경기 안양시의 한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차렸다. 독학으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익힌 뒤 사설 온라인게임업체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돈을 벌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는 인터넷으로 악성코드를 유포해 디도스(DdoSㆍ여러 대의 컴퓨터로 특정 사이트를 공격하는 해킹) 공격에 필요한 소위 좀비PC 1,000여 대를 확보했다.
그는 엔씨소프트사의 온라인게임 리니지를 불법으로 서비스하는 사설 게임업체 홈페이지에 ‘돈을 주지 않으면 디도스 공격을 하겠다’고 협박성 글을 올리고, 입금이 안되면 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게임 속도가 느려지고 서버가 다운되는 통에 회원들이 줄줄이 탈퇴하자 업자들은 박씨에게 40만~80만원씩을 부쳤다. 이런 수법으로 박씨는 지난해 4월부터 최근까지 185명에게서 2억5,000만원을 뜯었다. 사설 온라인게임이 불법이라 업자들은 신고도 못하고 박씨의 디도스 공격 협박에 설설 기었다.
박씨의 악명은 하늘을 찔렀다. 업자들은 그가 전화를 걸어 이름만 밝혀도 돈을 보냈고, 한 업자는 21차례에 걸쳐 1,590만원을 바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박씨에게 돈 안 주고는 장사 못한다”는 말까지 돌았다. 박씨와 친분이 있던 게임업자 강모(47)씨는 3,000만원을 내고 그에게서 기술을 전수받아 같은 수법으로 지난 1월부터 한달여간 다른 업자 15명에게서 600만원을 뜯어내기도 했다.
사설 게임사이트에는 정품 리니지 사용에 필요한 월정액을 안내도 되고 단기간에 레벨업이 가능한데다 아이템 가격도 싸 사람들이 꾸준히 꼬인다. 보통 200~400명의 회원을 확보한 업자들은 한 달에 많게는 500만원까지 수익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법으로 버는 돈에 비해 뜯긴 돈이 큰 액수는 아니지만, 손을 털고 업계를 떠나는 한 업자의 신고로 박씨의 행각은 막을 내렸다.
경기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15일 박씨를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강씨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엔씨소프트사에는 사설 게임업자들의 저작권법 위반 사실을 통보했다. 경찰은 엔씨소프트사의 요청이 있으면 이들도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수원=김창훈기자 ch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