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사람들은 온순했다. 관청에 불을 지르며 긴축에 반발하는 그리스인과 달리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시키는 대로 했다. 지난해 5월 780억유로를 융통해 준 EU와 IMF 요구대로 예산을 줄이고, 사람을 자르고, 연금을 깎았다.
그러나 9개월이 지난 지금 극약처방까지 받았던 포르투갈 경제의 체력은 회복될 기미가 없다. 오히려 긴축 때문에 경제는 활력을 잃고 소득은 줄어 빚도 갚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의사의 말을 믿고 독한 약을 복용했으나, 부작용 때문에 건강을 더 해친 격이다.
14일 뉴욕타임스는 “빚을 갚으려는 광범위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은 수렁으로 추락하고 있다”며 “구제금융을 받을 때 국내총생산(GDP) 대비 107%였던 국가부채는 내년에 118%로 늘어날 것”이라고 보도했다.
허리띠를 졸라맨 포르투갈이 빚더미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것은 빚 자체가 늘어서가 아니다. 분자(빚)는 그대로인데 분모(GDP)가 줄어 비율이 급증하는 것이다. 포르투갈의 GDP 성장률은 지난해 1.5% 감소세로 돌아섰고, 올해도 -3%를 기록할 전망이다. 정부가 지출을 줄이니 성장 둔화가 불가피하고, 연금과 일자리가 줄어드니 소비가 줄어 생산이 감소하는 악순환 구조다.
소득이 줄면 채무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키엘 세계경제연구소의 데이비드 벤섹 연구원 “포르투갈 실물경제는 성장을 지속해 빚을 갚을 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포르투갈의 상황을 낙관하던 IMF도 최근 “성장이 실망스러운 수준이라면 부채 상환이 불가능하다”며 전망을 수정했다. 긴축 때문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국가부도 사태를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EU와 IMF의 충고를 충실히 따랐던 포르투갈의 상황이 악화함에 따라 빚 많은 나라에 어김 없이 허리띠 졸라매기를 강요하는 독일 주도의 해법이 오히려 파국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헤지펀드 대부 조지 소로스는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 인터뷰에서 “긴축만 요구하면 1929년 대공황 같은 사태를 맞이할 것”이라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유럽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비판했다.
절약이 되레 국가경제를 망치는 포르투갈의 역설은 현재 구제금융 협상에서 EUㆍIMF와 열띤 줄다리기 거듭하는 그리스에도 적용된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15일 예정된 회의를 취소하고 그리스 의회가 통과시킨 긴축안이 여전히 기대에 못 미친다며 추가 긴축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7%로 떨어진 그리스가 추가 긴축을 하면 경제적 대재앙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시위대가 독일 국기를 불태우고 신문에 메르켈 총리가 나치 복장을 한 삽화가 등장하는 등 그리스에서 긴축을 강요하는 독일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스는 주말부터 이어진 시위로 건물 150여 곳이 피해를 입었고, 서부 도시 아그리니오에서는 은행과 우체국이 습격당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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