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으로 엄청난 집중력을 요하는 작품이죠. 감정 변화가 매우 극적이라 연주자들이 함부로 도전 못해요." 무대 후반부를 꽉 채울 쇼팽의 전주곡 전곡(24작품)을 두고 하는 말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피아니스트 백혜선(47)씨가 다음달 독주회를 갖는다. "제대로 표현되지 않으면 값싸 보일 수도 있는 쇼팽"까지 들고서.
2009년 가을 후 3년 만의 독주회다. 고국에서의 무대를 위해 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는 뉴욕에서 잠시 건너온 그는 1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시적 감각으로 승화된 영(靈)의 노래"라고 콘서트의 의미를 밝혔다.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드뷔시의 '영상', 메시앙의 '비둘기' 등 프랑스적 감성이 우선하는 자리다. 베토벤의 '소나타 31번'에 대해서는 "베토벤 하면 떠오르는 남성성이 아니라 자유스럽게 정제된 느낌을 줄 것"이라며 "이번 연주회의 별미"라고 소개했다.
열려있는 자의 자신감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표현에서 겁이 없어졌다"는 그는 "늘 깨어 있고, 생각이 늘 바뀌어야 한다" "오늘 것을, 내일이면 버려야 한다"며 열린 마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난곡인 베토벤의 '소나타 31번'을 언급하면서는 "이제 영혼을 표현할 나이가 되지 않았나 싶다"며 웃었다.
그는 한국 국적의 연주자로는 최초로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입상한 뒤 10년간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재직하다 전문 연주자를 선언하고 '자유인'이 된 지 7년째다. 그는 "학생들과의 만남, 가르침은 나이 들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며 강단에서의 10년을 "충전ㆍ소모의 균형이 안 맞았던 시간"이라 했다. 학생을 가르치다 보면 힘이 빠져 아무 것도 못 한다고도 했다.
뉴욕에서의 일상은 자녀 교육에 극성인 여느 부모와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일상이요? 특수음악학교(Special Music School)에 다니는 5, 6학년 두 아이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죠." 그러나 오후 3시까지 이어지는 연습을 통해 그는 진정한 자유와 교감한다고 했다. "연주는 피아노 소리만이 아닌 모든 것을 다 포함한다"고 말하는 그는 "같은 곡을 연주하면서 얼마나 다르게 볼 수 있나를 생각할 때, 앞을 향하는지 뒤를 향하는지 모를 때 고민스럽다"고 했다.
15년간 백씨의 실질적 매니저로 이날 함께 자리한 부산아트매니지먼트 이명아 대표는 "백씨는 부산국제음악제 중 실내악축제의 음악감독으로 국내외 신예들을 부지런히 소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씨는 "클래식이 서울에 편중된 현실을 반성한다는 의미"라며 "부산 음악가들과 외국 연주자들의 교류를 이어준다는 의미에서 5년 기한으로 참여한다"고 말했다. 동시대 음악 이야기로 오며 그는 한층 진지해졌다. 그는 "작곡가의 계보를 읽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한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많이 연주하려 한다. 그런데 진은숙씨의 작품은 너무 힘들다"며 웃었다.
"순수 예술 분야는 한국 정부에 '꽝' 아닌가요." 그는 한류 선전에만 치중하는 정부의 문화 정책에 쓴 소리도 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무대에 한국인이 많이 서지만 랑랑처럼 알려지지 않는 건 국가적 차원의 무관심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3월 21일 부산 문화회관 대극장, 22일 거제 문화예술회관 대극장, 2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9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1577-5266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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