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수수료를 정부가 정하도록 한 정치권의 법 개정안(한국일보 13일자 18면)이 난마처럼 꼬여가고 있다. 시장질서 파괴냐, 영세상인 보호냐의 가치 충돌이 첨예한데다, 찬반 양측 모두 헌법을 자기 논리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어 갈등 조정이 쉽지 않은 형국이다.
흡사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떠오른다. 전설에서야 알렉산더 대왕이 단칼에 잘라버렸지만, 현실에선 시간이 걸리더라도 얽힌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게 순리다. 전문가들은 양측이 동의하는 부분이 있는 만큼, 이를 바탕으로 서로 양보해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상황은 반대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지금껏 수세에 몰렸던 카드사들은 금융당국을 우군 삼아 역공을 강화하고 있다. 13일엔 카드사 노조가 국회 앞에서 실력행사(기자회견)에 나서는가 하면, 김앤장 화우 등 유명 법무법인을 동원해 헌법소원 등 총력전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영세가맹점에 대해 금융위원회가 우대수수료율을 적용해야 한다'는 조항이 재산권 침해(헌법 23조), 직업선택의 자유(15조), 경제질서 훼손(119조 1항) 등 위헌 소지가 많다는 논리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이날 간부회의에서 "설사 (법이) 시행돼도 원가 분석 후 합리적인 수수료를 직접 제시하는 게 불가능하고, 사회적 갈등 증폭에, 카드사 부실 시 책임문제까지 연결될 수 있다"고 카드사에 힘을 실었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도 비슷한 논리로 거들었다.
개정안 찬성 진영의 논리와 반격도 만만치 않다.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헌법 119조 2항에 비춰보면 이번 개정안이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최승재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 사무총장은 "가맹점들이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하면 형사처벌을 받는 조항이 시장경제에 반하는데도 침묵하면서 유리할 때만 헌법을 들먹인다"고 주장했다. 계열사 대형가맹점을 우대하는 카드사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제소, 대기업 카드사 가맹 해지 운동도 추진할 계획이다.
제재 방법을 놓고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지만 사실 '가맹점 수수료 차별금지' 원칙엔 이견이 없다. 카드업계도 이르면 다음달 수수료 체계 개편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다만, 관련 단체나 영세상인들이 들고 일어서야 수수료를 찔끔 내려주고, 대형가맹점에겐 알아서 기는 카드사들의 그간 행태를 보면 보다 강력한 수단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업종별 수수료 체계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상봉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30년 이상 묵은 업종별 구분 탓에 대형가맹점과 중소가맹점을 차별한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현재의 건당 수수료 부과는 중소가맹점에 불리하므로 택시요금처럼 기본요금이 있고 일정금액이 넘어가면 더 많은 수수료를 내는 정률제를 채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각에선 신용카드 결제가 민간소비의 60% 이상을 점하는 준(準)화폐인 만큼, 카드사가 폭리를 취하지 못하도록 호주처럼 정부가 수수료 상한선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효과는 더뎌도 근본적인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수료 책정은 시장 자율에 맡기면서 영세상인도 보호하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며 "영세상인 네트워크 구축 등으로 카드사 감시를 강화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금융관련 노조는 "전반적인 관리감독체계부터 반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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