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점은 400만원 900점은 개별 상담" 취업난 스펙 경쟁 악용작년엔 실제 대리 응시 무더기 적발하기도
"토익 700점 이하는 300만원이고요. 800점은 400만원입니다. 900점 이상은 대리시험 봐주시는 분하고 개별 상담하셔야 돼요."
낮은 토익 점수 때문에 번번히 입사시험 서류 전형도 통과하지 못해 고민하던 취업준비생 박민형(29ㆍ가명)씨는 한 온라인 영어 카페에 올라온 '토익 대리시험으로 900점 이상도 가능하다'는 글을 보고 솔깃해 브로커 A씨에게 연락했다.
A씨는 "위조신분증에 대리응시자와 당신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넣으면 시험감독관에게 걸릴 염려가 없다"며 박씨를 안심시켰고, 박씨는 착수금 명목으로 A씨에게 180만원을 보냈다. 하지만 이후 A씨는 점차 박씨의 연락을 피했고 곧 잠적해버렸다.
취업난 등으로 치열해진 스펙 경쟁 탓에 토익 점수에 목을 매는 수험생들의 심리를 악용한 사기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인터넷 구글 검색창에 '토익 대리시험'을 입력하면 "토익 대신 봐주실 분 찾아요" "토익 대리시험 알선" 등 토익 대리시험 관련 글만 수천 개가 올라온다. 그만큼 토익 대리시험 수요가 많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 8월 대구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대리시험을 의뢰 받고 운전면허증을 위조해 토익시험에 대리응시한 이모(24)씨 등 28명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와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무더기 적발하기도 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토익 대리시험 알선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대리시험 알선 브로커들을 통해 12일 확인한 관련 사이트만 2곳이다. '대리나X', '대리천X' 등의 이름으로 운영되는 이들 사이트에는 토익은 물론 토플, JPT(일본어 자격시험) 등과 각종 자격증 시험을 350만~500만원에 대리로 봐 준다는 글들이 떠 있었다.
또 대리시험 방법과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실시간 상담창까지 마련돼 있었다.
브로커 B씨는 "우선 의뢰인이 토익 시험 접수서류(토익접수 아이디ㆍ비밀번호 등)를 메일로 발송하는 시점에 200만원의 착수금을 결제하면 대리응시자를 지정해 주겠다"며 "위조 신분증을 사용해 시험을 본 뒤 의뢰인은 성적 발표일 다음날 잔금을 지불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들 사이트에서는 대리시험 외에도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위조는 물론 위조상품권 판매와 밀항 알선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이트를 살펴본 전문가들은 돈만 챙기는 사기용 '피싱 사이트'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들 사이트 주소에 붙는 'co.cc'와 'tk'가 피싱 범죄에 흔히 사용되는 무료 도메인이기 때문이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관계자는 "이들 대리시험 알선 사이트를 착수금만 떼어먹는 신종 인터넷 피싱으로 보고 수사 중"이라며 "토익 대리시험 광고 상당수가 졸업과 취업 등을 앞두고 절박한 수험생들의 심정을 이용한 사기인 만큼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박철현기자 k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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