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안에 감염성 질환을 앓아 항생제와 소염진통제를 주치료제로 처방 받은 A씨. A씨를 진료한 의사는 항생제ㆍ소염진통제 투여에 따라 위장장애가 올 수 있다면 보조제로 소화제를 추가 처방했다. 그런데 약값은 보조제인 소화제가 주치료제보다 더 비쌌다.
12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의사들의 이러한 과잉처방으로 부당하게 집행됐다가 환수한 건강보험 원외처방(의사들이 외래환자에게 처방하는 것) 약제비가 지난해에만 303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부터 10년 동안 2,366억원이었다.
정부의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해 처방했다가 환수조치된 원외 처방 약제비는 2002년 43억원에서 2005년 273억원으로 늘었으며, 2008년 이후 매년 300억원(2010년만 299억원)을 넘어섰다. 정부와 의료계 전문가들은 보통 의사들이 과잉처방을 하는 이유는 제약사들로부터 리베이트(뇌물)을 받았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특정 의약품을 처방전에 끼워 넣어 많이 팔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서울시내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약사 강모씨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약이 넣어져 있는 처방전들을 볼 때면, 바로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병원들은 공단의 환수조치에 소송으로 맞서며 반발하고 있다. 102개 병원이 지금까지 제기한 소송만 73건. 이들은 "요양급여기준은 보험재정을 고려해 제한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급여기준의 위반을 불법행위로 간주, 책임을 묻는 것은 진료권을 무시하고 환자 건강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첫 소송은 2003년 여수의 B의원에서 제기했다. 급성코인두염(감기)을 앓던 3세 유아에게 무려 7품목의 약을 처방했다. 이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항생제 사용 원칙에 위반됐다고 결론 내려 약제비를 조정하고, 건보공단이 환수에 나섰다.
지금까지 건보공단은 23개 소송에서 모두 이겼고, 현재 50개 소송이 계류 중이다. 소송남발에 따른 비용증가와 갈등증가 때문에, 공단의 징수 권한을 명확히 하는 법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국민건강보험법에 기준위반 약제비를 징수한다는 조항을 넣는 방안이다.
그러나 의료계 반발에 막혀 진척이 없다. 관련법 개정이 16대, 17대 국회에서 발의됐다가 심사조차 못하고 자동폐기 된데 이어, 18대 국회에서도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민주통합당 박기춘 의원이 2008년 발의했으나 2009년 4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 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한 뒤 특별한 이유 없이 2년 넘게 전체회의에 회부하지 않고 있다. 박기춘 의원측 관계자는 "2년 전 상임위 전체회의와 법안소위를 몇 번 오갔으나 병원쪽 로비가 심해서 논의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18대 국회에서도 자동 폐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