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을 태우는 일을 하는 화장로작업기사는 흔히 '화부(火夫)'로도 불린다. 엄연한 직업이지만 남성들도 꺼린다. 일이 험하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도 적지 않은 탓이다. 이런 '금녀의 영역'에 20대 여성 2명이 처음 등장했다. 국내 최초의 여성 화장로작업기사 기록을 갖게 된 이해루(27), 박소연(25)씨다.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 내 화장로. 하루 수십 구의 시신이 한 줌의 재로 변하는 현장이다. 인턴 3개월을 거쳐 9일부터 서울추모공원의 정식 직원이 된 이씨와 박씨가 일하는 곳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시신위생처리사도 초기엔 여자는 못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많이 하지 않느냐"며 말문을 열었다. "우리의 시작이 여성 후배들의 진입 장벽을 허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화장로작업기사는 시신이 들어있는 관을 화장로에 넣고 화장한 뒤 수골·분골 작업을 거쳐 유골을 유골함에 담는 일까지를 맡는다. 화장로가 작동하는 100분 동안엔 밖에서 시신이 잘 타는지 지켜본다. 만약 시신이 센 화력에 밀려 화구로부터 멀어지면 길이 2m, 무게가 10㎏이 넘는 막대기 모양의 작업 도구를 이용해 시신을 다시 화구 가까이로 끌어다 놓는 일도 한다. 처음 이 일을 했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이씨는 "작업 도구들이 무거워 다루기 어려웠지만 이젠 '힘'이 아니라 '요령'이 생겨 능수능란하게 잘 쓴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두 사람은 대학 선후배 사이다. 을지대 장례지도학과를 졸업했다. 각각 장례지도사, 장묘문화 연구원 등으로 일 하다 "화장로작업기사가 한번 돼보자"며 도전했다. 서울시설공단에서 모집한 화장로작업기사에 지원했는데, 알고 보니 자신들이 유일한 여성 지원자들이었다. 자연스레 면접 때부터 이목이 집중됐다. 면접관들로부터 "여성이고 나이도 어린데 할 수 있겠냐", "체력은 좋냐"는 식으로 20분 넘게 질문 공세에 시달리고 나서야 합격 통보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입사 뒤 맞닥뜨린 가장 큰 난관은 체력도, 기피 직업이라는 주위의 시선도 아닌 '화로의 열기'였다. 시신을 태울 때 화로의 온도는 보통 1,000도, 화장이 막 끝난 화로의 온도도 500~600도다. 그러다 보니 화로 근처에선 열기만으로도 피부가 벗겨지는 일이 다반사. 이씨는 "일하다 보면 장갑도 잘 녹고 심할 때는 안경 렌즈 코팅이 녹아 거북이 등껍질처럼 쫙쫙 금이 가곤 한다"며 "지금은 겨울이라 견딜 만 하지만 여름엔 화장로 주변 온도가 더 올라가 걱정"이라고 했다.
이들은 "화장장에서 일하는 만큼 남들은 겪지 못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때가 많다"고 했다. "수골 과정을 볼 수 있는 관망실 유리 앞에 촛농이 떨어져 있어서 처음엔 유족들이 초를 피우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촛농이 아니라 유족들의 눈물 자국이었죠. 순간 울컥하더라고요." 박씨의 얘기다.
처음으로 했던 화장도 잊을 수 없다. 성탄절 다음 날 지하철 구의역 화장실에서 발견된 신생아의 시신이었다. 외롭게 간 아이의 가는 길을 지켜주자는 생각에 동료들과 함께 작은 관에 과자와 꽃, 노잣돈을 한가득 넣었다.
이씨는 "다섯 살 아들의 엄마이다 보니 유족 한 명 없는 아이를 화장할 때면 특히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이들은 매일 다른 이의 '죽음'과 '슬픔'을 마주하는 게 일과이긴 해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받지 않는다"고 했다. 박씨는 "유족들이 유골함을 들고 가다 몇 번이고 돌아보면서 '잘해 줘서 고맙다'고 할 때 보람을 느낀다"며 "이 직업은 우울한 '감정노동'이 아닌 나를 성숙하게 만드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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