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마지막 인터뷰가 될 것 같다고 했다. 홍정욱의원은 그 동안 주요 매체를 통해 4월 총선 불출마선언과 정치권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긴 설명을 했지만 여전히 '꼼수'라는 시각이 존재한다고 했다. 하지만 결코 국회로 돌아가지는 않겠다고 했다. 지혜와 경험 부족으로 의정생활을 잘 못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4년간 지켜본 국회의 문제점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이제 조용히 사회에서 기여할 일을 찾겠다고 했다. 사단법인 올재를 만든 것도 그런 차원이다. 특히 국회의원을 하면서 청년들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데 기여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제조업을 하기 위해 경기도에 공장을 짓고 있다는 새로운 얘기를 꺼냈다. 소규모지만 친환경 재생산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했다.
-지금 양당이 공천개혁 문제로 정신 없다. 뭐가 문제인가.
"총선 대선 때마다 되풀이 되지만 기존 정치행태에 염증을 느끼는 유권자들이 새로운 얼굴을 찾는 것이 물갈이다. 공천의 문제점은 18대 국회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민심과의 단절, 자기들만의 리그라는 느낌을 강화했다. 동시에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국가의 성공과 국민의 성공을 이어주는 비전이 끊어졌다. 국가는 잘 되도 나하고는 상관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정치에 대한 불신, 개인 비전의 상실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물갈이가 요구되는 것 같다."
-공천 룰이 잘못 된 것 아닌가.
" 18대 국회 때 한나라당이 최악의 공천을 보여줬다. 원칙도 명분도 없는 공천을 하면서 민심이반의 시발점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원칙하에 진행하는 것이다. 일률적으로 다선, 나이 때문에 공천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정치는 경륜과 지혜가 수반된 분들이 해야 한다. 국회에서도 다선의원과 초ㆍ재선의원들이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다만 그 동안 다선 의원들이 상대적으로 쉬운 지역구에서 당선되면서 의정보다는 공천이 중요시되는 정치행태를 보인 측면이 있다. 민심과의 소통, 당과 국가에 대한 기여도에서 부족했던 다선 의원들에 대해서는 칼날을 들이대야 하지만 그것도 정확한 명분과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
-총선 불출마 선언의 배경은.
"당에 대한, 혹은 정치권에 대한 불만 불평은 아니다. 혼돈의 시대,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경박함, 여러 가지 부정적인 측면을 보여줄 수 밖에 없었던 4년이었다. 그 과정에서 내 힘이 미약했다. 4년은 대단히 긴 시간이다. 객관적인 목표치 뿐 아니라 주관적인 목표치에도 훨씬 미달했다. 지혜와 경험이 부족했다. 더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략과 전술적인 측면에서 그만두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괴감에서 출발한 것이다."
-다른 계획이 있다는 건가.
"단순한 정치적인 리더십뿐 아니라 경제ㆍ사회적 리더십도 중요하다. 단기 해법만으로는 사회와 경제 양극화를 치료할 수 없다.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옛날 성현들이 이 같은 급변상황에서 어떤 지혜를 냈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뿌리 깊은 고민을 할 것이다. 정치하면서 가장 한이 졌던 게 청년들에게 아무것도 못해준 것이다. 젊은이들의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아 당선이 되었지만 일자리 창출하는데 도움을 못 줬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유행하지만 실은 젊으니까 청춘이고 꿈이 있으니까 청춘이다. 젊은이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과 지혜, 이를 자본과 이어줌으로써 좀더 구체적인 꿈을 꿀 수 있도록 사회운동을 하고 싶다. 행동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청년실업 문제이 문제다.
"사회가 수수방관해서는 안된다. 청년들의 가려운 곳을 포퓰리스트적으로 긁어서도 안된다. 꿈과 도전을 강조하지만 무슨 꿈을 어떻게 도전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를 하지 못한다. 뜬 구름 잡는 얘기 아니면, 젊은이들에게 책임과 도전의지를 뺏는 포퓰리스트적 정치를 한다. 구체적인 길로 인도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사회와 정부가 못하면 민간이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젊은이들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정치적 선동에 매료된다."
-청년 창업 프로젝트 같은 걸 구贊構?있나.
"그건 아니지만 사단법인 올재를 만든 것은 지식과 지혜를 나누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 사회운동이 참여연대 중심의 권익운동에서 시작해서 '아름다운 가게' 중심의 복지운동으로 진행됐으나 지식과 지혜 나눔이 부족하다. 첫 번째 프로젝트로 고전 발간을 한 이유도 고전 속에 많은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전서적들이 너무 비싸다는 문제가 있다. 2,000원대 책을 만들어 매진됐고 무료전자책도 공급하고 있다. 9월에는 세계 디자인 포럼 등을 유치해서 세계 방방곡곡의 저명인들을 데려다 젊은이들에게 무료로 지혜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책을 발간한 계기는.
"마이크로소프트 중국지사에서 일했던 존 우드라는 임원이 있다. 그가 이라는 책을 썼다. 네팔로 트래킹을 가서 어린이들을 책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것을 보고 시작한 일이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룸투리드(Room to read)라는 사회운동을 펼쳤다. 기업의 후원을 받아 제3세계에 3,000개의 도서관과 200개의 학교를 건설했다. 깊은 감명을 받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다. 이것이 지식ㆍ지혜 나눔이다. 그런데 고전 서적 다섯 권만해도 10만원을 넘어간다. 오래전에 쓴 책들인데 누가 이윤을 취하길래 이렇게 비싼가를 조사했다. 그래서 이익을 내지 않고 인쇄를 하고, 교보문고가 팔아주고, 삼성 SK 등 대기업들이 후원을 했다. 다만 계속해서 내면 출판계의 질서를 문란하게 할 수 있으니까 5,000권만 한정에서 판 것이다. , 플라톤의 , 아리스토텔레스의 , 최치윈의 등 4권을 냈는데 하루 만에 완판 됐다. 고운집은 수십년간 몇십권밖에 안 팔린 책인데 교보 베스트셀러에 올라서 너무 놀랐다. 지식에 대한 열망, 혼란한 시기에 답을 찾고자 하는 의지다. 분기마다 4~5권씩 발행할 것이다. 못 사서 아쉬운 사람들에게는 전자책을 무료로 공급한다. 독서가이드라인, 독서토론방 등 동영상도 준비하고 있다. 어디서나 삼삼오오 토론하고 강의를 볼 수 있도록 이어갈 생각이다."
-구체적인 길을 제시할 수 있나.
"길도 두 갈래다. 스스로 판단하고 이해할 수 있는 천년의 지혜가 담긴 고전교육에서 우리 교육의 변화가 시작된다고 본다. 우리 교육은 산업혁명 때 프러시아에서 시작되어서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노동자를 찍어내는 방식이다. 사색과 토론을 없애고 발췌와 암기만 하는 방식이다. 이런 것이 결국 고속경제성장을 유도했지만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려면 커다란 한계가 있다. 다시 돌아가서 교육의 기본을 제시하고 청년들에게 구체적인 직업과 지혜 등을 통한 커리어를 제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다시 공직에 올 생각은 있나.
"공직은 영예로운 것이다. 동서양의 철학 시원이 논어와 플라톤인데 둘 다 학문에서 경륜과 경험을 쌓은 뒤에는 공직에서 봉사하라고 한다. 사회 기여의 정점이 공직이다. 나는 한 분야를 떠나서 기웃거리거나 되돌아 본적이 없다. 내가 역량이 부족해서 국회를 떠나지만 채워진다고 다시 오겠다는 것은 아니다. 내 역량은 여기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른 공적인 기여의 길이 있다면 할 수 있다. "
-봉사직 국회의원을 주장하는데.
"국회의원에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안락함과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그래도 공천, 재선에 대해서 목을 매겠는가. 결국 (그 안락함과 편의에 대한) 욕구가 결국 여당에서는 거수기, 야당에서는 떼쓰기로 나타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봉사와 희생 차원에서 일할 수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다만 그럴 경우 의정의 치열함이 보장 될 수 있겠느냐는 반박도 있다. 하지만 의정에 대한 치열함은 사명감에서 와야지 생계의 치열함에서 시작되어서는 안된다."
-대부분이 생계형 국회의원인가
"생계형 국회의원, 특혜형 국회의원이라는 시각을 우리 국민들이 많이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국회의원은 미래까지 특혜를 누리고 많은 예산을 소모를 한다는 비판이 있다. 입법활동에 필요한 비용 이외 특혜와 기득권을 누려야 할 이유가 없다. 봉사와 희생정신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특혜와 기득권을 대폭 낮춰야 한다."
-그럼 우수한 사람들이 오지 않는 것 아닌가.
"지금도 똑똑한 사람들은 갈 길이 많다. 이미 우수한 인재들이 정치판에 오지 않는다. 공직의 명예로움, 사명감으로 무장된 사람들이 가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우리 정치가 희망이 있나.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면 죽은 정치다. 희망을 준다라는 것이 정치의 알파고 오메가다.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립과 폭력이고, 불통과 기득권이다. 우리의 권력이 대립과 분열을 극복하고 최소한 미국과 영국 정도의 권위와 품위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열쇠는 국민이 쥐고 있? 국민이 틀을 정해주고 정치가 따라가야 한다. 지속적으로 국회나 정치권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대립과 분열, 선동과 왜곡을 일삼는 사람들이 다시 지역이나 이념적인 색채 때문에 국회로 보내진다. 심판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몸싸움과 난장판을 없애려면 국민들이 나서야 바뀔 수 있다.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 기득권에 몰입하는 사람들을 심판해줘야 한다."
-좌파의 귀염둥이, 하버드 엄친아, 완벽주의자 등의 별명이 많다.
"치명적인 것은 없다. 좌파 귀염둥이, 글쎄, 반대진영에서도 호감을 가진 것이라면 좋은 것이겠다. 좌우를 서로 아우를 수 있는 이미지는 나쁘지 않다. 완벽주의자는 좀 그렇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칠칠하지 못하고, 잘 흘리고 다니는지 안다. 이미지라는 것은 모래성 같아서 쉽게 쌓아지고 쉽게 허물어진다. 그것보다는 자기다운 것을 간직하는 것이다."
-자기다운 것이라 함은.
"어떤 틀이 아니고 가슴이 부르는 소리 같은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비닐 잠바입고 시장에서 국밥 먹고 다니고 사진 찍어서 올리는 행태는 중요하지 않다.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느냐, 제대로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양심이라고 생각한다. "
-FTA 비준안 처리에 기권하기 전에는 존재감이 별로 없었다.
"외통위 활동하면서 대북정책 등에 대해 개혁적인 목소리도 많이 내고 법안도 많이 냈지만 언론이 관심이 없었다. 부정적인 일에 연루되거나 사고를 칠 때나 언론이 관심을 보인다. 당시 18대 국회를 쇠고기 정국으로 시작했고 가을에는 한미 FTA 비준안 상정문제로 해머국회를 이끌었다. 그 다음에는 미디어법, 4대강 예산을 통해서 국회가 절단이 났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특히 2010년 예산안 때 몸싸움을 하는 것을 보면서 동료의원들과 규합해서 물리적 폭력이 동원된 의사결정과정에는 불참하고 이를 어기면 불출마하겠다는 약속을 국민에게 드린 것이다. 그때도 다 쇼라고 했다. 첫 시험대가 한미FTA 법안 소위에서 나온 것이다. 순진한 생각인지는 몰라도 조금만 노력하면 야당과 합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데드라인도 없는데 여당이 오래 기다렸다는 이유만으로 밀어붙이는 것에 동조할 수 없어서 기권을 선언한 것이다. 그것 때문에 결과적으로 법안 소위에서 부결되어 뉴스가 됐지만 이후 여야합의를 통해 통과됐다. 조금만 더 기다리고, 한걸음만 더 남겨뒀어도 될 수 있었는데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후회가 없다."
-불출마 선언, 이정희 의원에게 손수건 건넨 것 등에도 음모론적 시각이 있다.
"그런 것들을 꼼수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 우리 정치 문화의 한계다. 아무리 이념적, 정치적으로 대척 점에 있더라도 인간적인 차원에서 위로해줄 의무가 있다. 길가에 모르는 여성이 울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그런 부분을 꼼수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 정치의 품위 문제다. 너무나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일, 세간의 시정잡배도 하면 지탄을 받는 일이 국회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진다. 정치적인 여지를 남기지 않고 제가 잘못했으니 불출마하겠다고 해도 꼼수라고 한다."
-앞으로 뭘 할 건가.
"정치권에서 생활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지 못한 게 아쉽다. 그래서 힘들겠지만 제조업을 해보려고 한다. 많이 공부를 하고 있다. 친환경 재생산업을 하려고 경기도 인근에 작은 공장을 짓고 있다. "
-가족 얘기를 해달라.
"아버지께서는 일찍부터 생계를 책임지셨다. 공부를 하고 싶어 하셨는데 할머니께서 암에 걸리면서 배우의 길로 가셨다. 미국 콜로라도대에 합격을 하고도 포기하고 배우로 데뷔를 하셨다. 가족양육 때문이다. 이후 한눈 팔지 않고 가정적, 사회적으로 품위를 잘 유지하셨다. 유혹도 많았을 것이다. 국회의원 공천제의도 받았지만 '내가 죽으면 누가 나를 국회의원으로 기억하겠나. 나는 영화배우다'며 거절하셨다. 가족들에 대한 희생과 애정이 강했다. '나는 가족을 위해서 살았지만 너희들은 사회를 위해서 살라'는 말을 평생 하셨다. '공직, 공직, 공직'으로 세뇌가 됐다. 나는 법 금융 정치 등 드라이한 필드는 다 해봤다. 앞으로도 그렇게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갈 것이다. 하지만 내 아이들은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생활로 세상의 한 구석을 밝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예술이건 과학이건 체육이건 좋다. 단지 한구석을 밝히고 우뚝 서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홍정욱은 누구인가.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8년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영화배우 남궁원의 아들이다. 하버드대 동아시아학과 학사, 스탠퍼드대 로스쿨, 서울대 정치학과 교환학생 등을 거쳤다. 베스트셀러로 <7막 7장>이 있다. 좌파의 귀염둥이, 완벽주의자, 하버드 엄친아 등의 별명을 가졌다.
조재우 선임기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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