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판사'로 명성을 떨친 발타사르 가르손(56) 판사가 스페인 대법원으로부터 자격정지 11년의 판결을 받았다. 판사직을 사실상 마감하게 된 이번 판결에 스페인 야권과 국제사회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법리해석이 아니라 그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보수세력의 정치적 판단이 개입된 판결이라는 것이다.
AP통신 등 외신은 스페인 대법원이 9일(현지시간) 집권 국민당의 관계자가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비리 사건과 관련해 불법도청을 지시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대법원 판사 7명이 참여한 재판부는 만장일치의 판결문에서 "가르손 판사가 교도소 수감자와 변호인의 대화를 녹음하도록 자의적으로 지시했다"며 "그의 행위는 전체주의 정권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검사들조차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선언한 사건이었지만 검사의 기소독점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스페인 법률 특성상 법원이 재판을 주도해 진행했다.
가르손 판사의 거취가 주목을 끄는 것은 그가 권력 비리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특히 2008년 스페인내전(1936~1939년)과 프란시스코 프랑코 정권(1939~1975년) 때 11만4,000명이 살해된 사건을 수사하라고 명령한 것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보수세력은 즉각 반발했고 극우단체들은 그를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이번 판결도 본질은 과거 범죄의 처벌을 막으려는 시도라고 언론들은 보고 있다.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뒤 가르손의 지지자 600여명은 수도 마드리드의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 모여 "수치스런 판결"이라며 사법부를 비판했다. 국제법률가위원회(ICJ) 등도 합당한 이유 없이 판사 활동을 범죄로 단죄할 경우 사법부 독립을 헤친다고 비판했다. 가르손은 스페인 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청구, 업무에 복귀하겠다고 했지만 판결을 뒤집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판결에 앞서 이미 2010년 5월 직무가 정지돼 최근까지 국제사법재판소와 콜롬비아 정부 고문으로 일했던 만큼 유사한 방식으로 인권 업무를 담당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인도적 범죄는 국가와 시효 등을 초월해 법적 테두리 안에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보편적 관할권'을 주장해온 가르손 판사는 칠레의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와 알 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체포영장을 발부하는 등 반인도적 범죄 해결에 노력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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