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잡히지 않겠다/구드룬 파우제방 지음ㆍ무타보어 옮김/별숲 발행ㆍ248쪽ㆍ1만원
"제 소원은요, 어서 빨리 몇 살 더 먹는 거예요."
"왜냐고요? 우리 아버지처럼 도둑이 되고 싶거든요. 하지만 아버지보다 훨씬 더 훌륭한 도둑이 될 거예요.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고, 원하는 건 무엇이든 마음대로 훔칠 수 있는 도둑 말이에요!"
남미 빈민가. 어린 여동생 루이자의 손을 꼭 잡고 부자 동네로 구걸 온 인디오 아이 호셀리토는 "소원이 뭐냐"는 유럽 아줌마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먹을 것을 달라고 문을 두드린 아이들에게 수프 한 접시 대접하고 약간의 쌀과 소시지, 지폐 한 장을 쥐어준 뒤였다.
<난 잡히지 않겠다> 는 도시 빈민 문제를 다룬 독일 작가의 사회 소설이다. 배경은 작가 자신의 체험이 녹아 든 남미의 한 항구도시. 호셀리토의 아버지 라몬 칼데라는 산골에서 집 짓는 기술자였다. 하지만 그곳 삶에 갑갑증을 느끼고 배고픔과 소음, 치열한 생존 경쟁이 상존하는 대도시로 자청해 나온다. 공장 노동자가 돼 부자는 아니어도 가족과 단란하게 살아가던 그의 운명이 바뀐 것은 공장에서 손가락 3개가 잘리는 사고를 당하면서부터다. 난>
아버지가 일자리를 잃고 만 칼데라의 가족은 도시 빈민의 지독한 가난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 아버지는 구걸이 도둑질과 같다며 자존심을 지키려 하지만, 어머니는 당장 먹을 쌀이 없어 아이들에게 몰래 구걸을 시킨다. 아버지 역시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선택한 건 결국 도둑질이었다. 과일가게 차릴 때까지만 도둑이 되려던 그는, 하지만 망보던 아들 호셀리토가 지켜보는 가운데 담을 넘다가 경찰 총에 맞아 죽고 만다.
소설의 줄거리는 작가가 호셀리토의 입을 빌려 들려주는 남미 도시 빈민의 가계사다. 지극히 사실적이면서도 담담하게 엮어 나가는 칼데라 가족의 슬픈 가족사에 가슴이 아려오던 독자들은 책 읽기를 마칠 때쯤 도둑이 되겠다는 호셀리토의 뜻밖의 대답에 쾅 하고 머리를 한 대 얻어 맞고 만다. 소설 주인공이 '말을 잃은 채 멍하니 서 있었'던 것처럼. "세상은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로 나뉘어 있다.…가난한 사람들은 감옥에 가야만 한다"고 현실을 꼬집는 작가는 1997년에 낸 이 작품으로 독일 청소년문학상인 북스테후더 불레 상을 받았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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