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밤, 11시가 다 되도록 아내가 난방이 꺼진 썰렁한 거실에서 따뜻한 방으로 들어오질 않는다. 가만 보니 담요를 뒤집어 쓰고 소파에 앉아 TV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뭘 그리 보느냐"고 물으니, "해품달"이라고 한다. "해가 품은 달이냐"고 물으니 "해를 품은 달"이라고 건성으로 답한다. 은근히 장난기가 발동해 "그거 일식인가, 월식인가"라고 농을 던지니 안 들리는지 아예 대답도 안 한다. 아이구! 아내를 드라마에 빼앗기고 말았구나.
■ 심통이 나서 트위터, 페이스북에 '해품달, 도대체 넌 누구냐'는 글을 올렸다. "아내가 안 들어온다", "얼마 전 본 영화 <범죄와의 전쟁> 에서 깡패도, 일반인도 아닌 반달이 나오던데 그런 달이냐"는 객담을 주저리주저리 썼다. 이런! 평소 정치 평론을 올리면 반응이 신통치 않던데, 이번에는 많은 댓글이 붙었다. "거실로 나가라"는 조언도, "감히 반달과 비교하다니"라는 질책도 있었고 "파업 중 짬날 때 VOD로 본다"는 MBC 기자의 글도 있었다. 범죄와의>
■ 시청률을 보니 거의 40%에 육박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적극적 반응이 이해가 갔다. 어제 논설위원실 회의 때 슬쩍 이 얘기를 꺼냈더니 놀랍게도 철학적 담론을 주로 하는 선배까지도 열심히 보고 있었다. 자료도 보고 얘기를 들어보니, 최근 사극은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가미한 팩션(팩트+픽션)이 대부분인데 <해품달> 은 완전한 지어낸 이야기였다. 무협지의 흑마술도 나오고 권력암투도 전개되며 추리극의 요소도 담은 데다 권선징악의 통쾌함도 있었다. 해품달>
■ 이러니 누군들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모든 요소 중 으뜸은 역시 사랑이었다. 세자빈이었던 무녀와 젊은 왕의 지극하고 변치 않는 사랑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게 <해품달> 을 보는 이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한 선배는 아픈 아내 곁에 있어주고 얘기를 나누기 위해 <해품달> 을 함께 본다고 했다. '어른 동화'인 이 드라마가 참 좋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도 내주에는 <해품달> 을 보면서 은근슬쩍 아내에게 말이나 걸어볼까 보다. 해품달> 해품달> 해품달>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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