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한다는 예고가 나간 날, 고3 때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시골 촌 학교에서 이게 웬 경사랍니까." 격려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얼굴이 그 모양으로 나왔을까, 사진 타박만 해대는 내게 선생님께서는 예의 그 존댓말로 이러셨다.
"옛날 얼굴을 내가 기억하는데 그럼 못 본 사이에 수술이라도 하셨다는 겁니까?" 아이고 네네, 닥치고 글이나 잘 쓰겠습니다, 전화에 대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데 가물가물 그 시절 이런저런 얘깃거리들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예민했고, 고집 셌고, 그만큼 눈물도 흔해 선생님을 곤혹스럽게 만든 적 많았던 나.
왜 사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반복하면서도 세 끼 밥도 모자라 간식에 분식에 다섯 끼나 챙겨먹던 모순의 나. 그래도 밥숟가락이라도 뜨고 사는 것은 선생님이 계셔서가 아닐까 인정하는 순간을 종종 맞닥뜨리곤 한다.
미안하고 고마울 때는 반드시 손 편지를 쓰라 하셔서 그걸 배웠고, 잔칫상 차려진 곳은 안 가도 되나 제사상 차려진 곳은 꼭 가라 하셔서 그걸 배웠고, 교과서는 안 읽어도 좋으니 책은 가리지 말라 하셔서 그걸 배웠다지. 정말 인간적이다, 할 참 인간이 되고 싶은데 이제 누구에게 가르침을 내어달라 조를까. 시대의 스승이 다 가고 없는 이 마당에. 일단 미루고 미뤘던 고3 때 담임 선생님부터 뵙자 할 참이다. 백화점 세일 시작한다는데 새 옷 한 벌 사 입고서.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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