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외국인 CEO들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가다 자연스럽게 한국의 첫인상을 물었더니 이사한 첫 날의 경이로운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가 얘기한 경이로운 경험은 바로 이사 당일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한국의 이사 시스템이었다. 에어컨 설치에서부터 케이블 TV, 인터넷, 전화, 도시가스 등 필수 서비스들의 설치 작업들이 단숨에 완료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대로 가구를 배치해주고, 액자를 걸 위치에 못까지 박은 후 청소까지 깨끗이 해주는 서비스에 감동을 느끼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동석했던 다른 외국인도 맞장구를 쳤다. 외국에서는 이사 첫 날 안방 침대에 누워 TV를 시청하고, 이메일을 체크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란다. 이사 직후 며칠간은 집안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호텔 신세를 지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이사 시스템으로 시작된 대화는 주문 다음날 바로 도착하는 택배 등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는 한국 사회의 빠른 스피드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졌고, 두 외국인 모두 "한국이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 세우면서 그 날의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이날의 대화는 필자로 하여금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일상적인 모습들이, 그리고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경이로운 경험이자 감동이 된다는 사실도 그렇거니와 한국 고유의 기질과 생활문화들이 우리가 가진 가장 큰 경쟁력이 되면서 동시에 한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는 우리가 고쳐야 할 문화로 간주된 적도 있었다. 각 언론 매체에서 나서 캠페인을 펼친 적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인의 특징이자 우리가 가진 가장 큰 경쟁력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빠른 결과를 위해 어느 정도 용인되던 적당주의를 완전히 지워낸 것이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실제 한국의 대표산업인 전자, 자동차 등이 짧은 시간 내에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빠른 속도로 선두 그룹을 따라잡는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가장 잘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속도전에 익숙한 우리의 문화가 있었다.
하지만 패스트 팔로워 전략이 이제는 더 이상 최선의 전략이 아니다. 한국의 주력 산업들은 이미 세계 정상급으로 올라섰고, 벤치마킹의 대상 역시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즉 패스트 리더로서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
빨리 따라가는 것이 아닌, 빠르게 앞서 나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남들의 공식을 따라 푸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만의 성공 방정식을 만들어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실패가 따르기 때문이다. 실패가 용인되는 문화가 더 커져야 한다. 그리고, 창의성이 뛰어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젊은 마인드의 조직이 필요해 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 고유의 기질과 문화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경쟁력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따져보면 선진국들과의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우리가 가진 무기가 사소한 것 같지만 강력한 경쟁력이 너무나 많다. '선공후사', '살신성인' 등 우리 생활 속에 뿌리내리고 있는 유교적 가치가 그렇고, 한국인 고유의 '신바람 문화'가 그렇다. 특히 '빨리빨리' 문화를 한국인 고유의 '신바람 문화'와 결합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안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타의에 이끌려 빠르게 달려가면 오래가지 못한다. 과속을 일삼는 자동차는 연비가 나빠지고 고장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신이 원해서, 신바람이 나서 하는 일은 과속을 해도 탈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시너지가 생긴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우리만이 가진 무기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좀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도 있다. 우리가 하루 만에 이사를 끝내고, 24시간 쇼핑을 할 수 있고, 주말에도 택배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받는 서비스는 당연한 것일 수 있지만 그들의 노력과 희생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박동훈 폭스바겐코리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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