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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다른 몸을 대하는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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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다른 몸을 대하는 윤리

입력
2012.02.0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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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우리는 역사상 가장 떠들썩하고 또 집요하게 몸을 숭배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다 텔레비전을 켜서 시선을 둘라치면, 그것은 대개 영락없이 몸에 관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몸의 생김과 관련한 신조어는 이제 따라잡기도 힘들다. 브이라인이 어떻고 꿀벅지가 어떻고 따위의 말들은 아마 이제는 반쯤 시쳇말이 되었을 것이다. 성형과 미용을 둘러싼 상품들이 이토록 넘쳐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사람들이 몸에 쏟는 관심이 크긴 큰가 보다. 그렇지만 그 몸은 실은 오직 ‘접근금지’의 몸이다. 특별히 고약한 체취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텐데도, 어쩌다 동네 잡화점 같은 곳을 기웃대다 보면 꼭 방취제를 쌓아놓은 곳을 꼭 마주친다. 나는 방취제를 마주할 때마다 이 물건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몸의 사회학을 압축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우리 시대에 가장 지엄한 윤리적인 계율이 있다면 그것은 간섭과 침해의 금지일 것이다. 나쁜 행동으로 꼽히는 것들을 두루 찾아 열거해보면 그것은 대개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위해를 가하는 일이다. 그 행위의 종류는 이루 말할 것 없이 다양하다. 사흘이 멀다 하고 아파트 관리실에서 들려오는 이웃을 불편하게 하는 소음을 내지 말라는 귀 따가운 경고에서부터 주위 사람을 불편케 하고 해가 되는 흡연을 길거리에서는 삼가라는 훈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언제나 타인과 안전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 안전을 위하여 놓인 거리에서 사실 타인의 몸은 오직 구경꺼리일 뿐이다.

안전거리에 놓인 몸은 내게 방부 처리되고 무해한 시각적인 볼거리일 뿐이다. 그러나 본디 타인의 몸은 근본적으로 낯설고 난폭한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먹은 것을 고스란히 자신의 몸의 냄새로 뱉어내고 자기가 제어할 수 없는 표정과 포즈로 내게 다가온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못견뎌한다. 그 탓에 우리는 관계를 맺지만 그것은 정작 관계라는 실체가 빠진 가짜 관계를 향해 걸음을 옮겨가고 있다.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란 것이 해가 되지 않도록 서로를 대하는 규칙을 정해놓은 사교 관습을 쫓는 것이라면, 그것은 관계랄 것도 아니다. 입 냄새 없는 키스, 은밀한 그 곳의 냄새를 없앤 섹스, 소음 없는 이웃 지간, 담배 냄새 한 점 너울대지 않는 산책 등이 이른바 우리 시대의 관계의 진면목이라면, 나는 그것을 실은 관계라 할 수 있을지 의아스럽다.

그렇다면 “너는 쩍벌남도 무시하고, 하의상실 여자를 관대하게 보아 넘기자는 말이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그렇다는 것이다. 그것이 영 볼썽사납고 자신을 불편하게 한다면 댁이 나서 시비를 따지면 될 일 아닐까. 내게 있어 정작 불편한 것은 불편을 끼치는 누군가의 몸짓보다 그것을 모두가 쫓는 윤리를 위반한 것이라고 시치미를 뗀 채 마치 모두의 공적(公敵)을 만난 것처럼 각다귀처럼 달려들어 힐난하는 것이다. 이러한 도덕적, 정치적으로 올바른 윤리에 기댄 서툰 폭력은 실은 윤리적인 것을 온전히 위반하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없을 때, 올바르다고 알려진 행위의 코드에 기댄 채 손쉽게 그 타인을 비난할 수 있다. 윤리는 바로 그런 짓을 피하기 위한 행위를 가리키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나날이 섬세해지는 공중도덕은 또 나날이 윤리의 공백지대가 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윤리는 타인을 타인으로서, 나에게 낯선 위협으로서 대하면서 출현한다. 따라서 윤리는 타인을 온전히 내게 있어 폭력으로서 인정하고 그것을 관계를 만들어내기 위한 밑천으로 삼는 일이다. 매너 없이 내가 타인을 대할 때, 나는 나의 건방진 몸짓으로 타인과 불화하겠다는 말을 건넨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제 그런 식의 타인을 조금씩 제거하고 있다. 우리가 가진 타인은 우리와 관계없는 타인이기 때문이다. 그 타인은 관계 밖에 서있는 무조건적인 위협의 원인으로서의 타인일 뿐이다. 그 타인을 제거한 세계에 윤리란 것이 자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잃는 것이 너무 많다. 몸도, 윤리도, 타인도 송두리째 잃은 세계에 살게 된다는 것은 아무래도 서글픈 일이다.

서동진ㆍ계원예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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