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가진 사람이 현명함을 잃어버리면 수많은 사람들이 고달프다. 권력의 속성에 매몰되지 말고 권력 본연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노무현 정부 출범초기 참여민주주의를 표방하며 내세웠던 슬로건이다. 그러나 이 말은 도리어 '대통령은 곧 권력자'라는 함의를 표상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중국의 붉은 별, 마오쩌둥이 한 말이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 말은 마오쩌둥을 비판하며 권력을 잡은 실용주의자 덩샤오핑이 그의 심복 장쩌민을 통해 천안문 사건을 무력진압하며 사용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다.' 권력의 무상함을 이 보다 더 절절하게 표현한 말은 없을 것이다. 최근 잇따라 터져 나오는 정권 말의 부패와 비리사건들을 일별하면서 새삼 곱씹게 되는 말이다.
권력의 의미는 다양하다. 넓은 의미로는 물리학의 에너지에 해당하는 것이라 하여 '의도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힘'(러셀), '어떤 사회관계 내부에서 저항을 무릅쓰고까지 자기의 의사를 관철하여야 하는 모든 기회'(막스 베버)이기도 하다.
그러나 권력이라 하면 보통 정치권력을 의미한다. 바로 그 정치권력의 속성을 중국 5,000년의 역사 속에서 고찰해 본 책이 (화원위엔 저)이다.
책은 중국 5,000년의 역사 속에서 그 빛을 찬연히 발하고 있는 권력가 38인과 그들이 행한 권력의 도를 상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제환공, 제갈량, 유방, 건륭제 등 중국의 역사를 만들어온 이들이 어떻게 권력을 만들어냈는지, 어떻게 권력을 유지했는지, 어떻게 권력을 경계해왔는지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무엇보다 가슴에 와 닿는 말은 '권력은, 천하의 큰 이로움이자 큰 해로움(權力, 天下之大利大害)'이라는 진술이다.
권력은 과연 언제 이로움이 되고, 언제 해로움이 되는 걸까. 그에 대한 해답은 서구의 책으로 대비해봄직하다. 페터 빅셀의 산문집 에 맞춤한 비유가 나온다. 책 속의 짧은 글 '발리의 사제는 그저 가끔씩만 오리를 가리킨다.'를 소개해 본다.
발리에 사는 친구가 내게 말했다. "사제는 뭔가 필요하면 손가락으로 그걸 가리킨다네. 그럼 가질 수 있지." 그러면 사제는 부자가 될 수 있겠다고 하자, 친구는 깜짝 놀라 날 바라보았다. "아니야, 사제들은 현명해."
그는 사제들이 현명하고, 오리가 필요하면 오리를 가리킨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사제도 사람이며, 사람은 권력을 악용하는 성향이 있다고.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아도 간혹 그러는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은 그러냐고 물었고, 나는 창피하지만 고개를 끄떡이며 시인했다. 그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해명거리를 찾으려고 했다. 한참 뒤에 그가 말을 꺼냈다.
"사제들은 피곤해. 엄격한 학교를 다녔고, 산스크리트어와 또 다른 언어와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평생 배우고 또 배우지. 마침내 사제가 됐을 때는 이미 무척 늙었다네. 권력을 사용하기에는 너무 피곤한 상태지."
어쩌면 현명함은 피로와 관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피로는 한때 신중함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도 우리의 민주정치는 너무 느릴 때가 많다. 하지만 정치가 너무 빨라지고, 정치적 성공이 스포츠가 된다면 얼마나 끔찍하랴.
그들은 권력을 소유했다. 모든 것을 가리키고, 모든 것을 소유한다. 그러나 발리의 사제는 그저 가끔씩만 오리를 가리킨다.
바야흐로 선거의 해이다. 바라건대 권력 본연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을 뽑았으면 좋겠다. 선거에 나온 후보, 투표하는 국민 모두다 발리의 사제들이 왜 가끔씩만 오리를 가리키는 지를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최준영 작가·거리의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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