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많은 공을 들였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은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았다. 뚝섬유원지를 비롯한 둔치 지역 정비 공사의 실제 장면은 안 그래도 콘크리트투성이인 한강에 '시멘트 칠'을 덧붙이는 것으로 비칠 만했다. 천호동 둔치 모래톱에 자연스럽게 이뤄진 갈대밭이 산책공원 조성을 이유로 파헤쳐졌다. 호안 시멘트 벽돌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경사면을 거의 덮을 정도의 토양층까지 형성했던 잡초들이 '호안 녹화'를 위해 뽑혀나갔다.
■ 같은 시멘트 칠이라도 노들섬 오페라하우스는 달랐다. 재공모 절차를 거쳐 2009년 최종 확정된 오페라하우스의 조감도는 행복한 예감을 안기기에 족했다. 6,700억원이 넘는 공사비가 잠시 마음에 걸렸지만, 수도 서울은 물론이고 한국의 품격을 위한 긴 안목의 투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더 컸다. 서민 삶과의 거리만으로 재면 오페라하우스처럼 반(反) 서민적 시설이 없겠지만, 정치나 행정이 서민 정서와의 밀착만 겨냥해서야 존재가치의 자기 부정이다.
■ 서울에 부족한 시설로는 호텔이 으뜸이고, 오페라하우스를 비롯한 대형 문화 시설이 그 다음이다. K팝 흥성기를 맞아 폭발하듯 늘어난 대규모 공연 수요를 소화하지 못해 공연장 확보를 위한 경쟁이 연중 뜨겁다. 고급문화도 다르지 않다.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 무대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된 지 오래다. 공급 숨통을 틔워주는 것만으로도 새 오페라하우스는 투자 값어치가 있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오페라하우스에 대한 자부심이야 돈으로 따지기 어렵다.
■ 지자체 사업 특유의 재원 낭비가 거론되지만, 서울에 들이댈 잣대는 아니다. 일본 시가(滋賀) 현의 '비와코(琵琶湖) 홀'은 광대한 호숫가에 최신 설비의 오페라하우스 등을 갖추었다. 주변 풍광과 시설로는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못지않지만 외진 지방도시라는 지리적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해 지역음악당으로 전락했다. 같은 시설이 도쿄 바닷가에 들어섰다면 상황이 전혀 달랐을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텃밭 구상에 지워진 오페라하우스의 꿈이 못내 아쉽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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