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등장하고 사람과 동물의 애틋한 우정이 묘사된다. 흔하디 흔한 소재 아니냐고 누구나 반문할 만하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을 배경 삼았고, 감독이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말을 듣는다면 귀가 솔깃해질 듯하다. 스필버그와 전쟁은 적당한 볼거리와 어느 정도의 감동을 보장하는 이름이자 키워드 아닌가.
'워 호스'는 고전적인 화법으로 보면 모범답안에 가까운 영화다. 지나치게 정답 같은 영화라는 점이 되레 약점으로 작용한다. 영화는 감동과 재미를 적절히 던져주지만 옛날 방식의 이야기 전개와 인물 묘사는 흥미를 떨어트린다. 그래도 화려한 볼거리만 앞세우고 기본기가 덜된 영화에 물린 관객들이라면 큰 불만 없이 즐길 만하다.
술김에 비싼 값을 주고 순종 망아지를 산 가난한 영국 시골 농부가 영화의 서두를 연다. 청소년인 아들 알버트(제레미 어바인)는 말을 보자마자 흠뻑 빠져들어 길을 들이게 된다. 둘은 한 몸이 되어 불가능해 보였던 자갈밭 갈기에 성공해 위기에 처한 집안을 구하기도 한다. 그렇게 알버트와 그의 애마 조이는 우정을 다져가지만 전쟁이 발발하고 조이는 징발된다. 이후 영화는 조이의 전장 속 질곡 많은 여정을 그려낸다. 조이는 영국군 장교를 태웠다가 독일군 대포를 끌게 되는 등 갖은 고난을 겪고 여러 사람들과 연을 맺게 된다.
인간과 말의 사연이 이야기의 골격을 이루지만 영화는 우정만을 앞세우지 않는다. 조이의 시선을 통해 전장의 참혹함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애와 비극을 전한다. 열 네 살 동생을 구하려다 동생과 함께 총살을 당하는 독일군 병사, 심장병에 시달리면서도 해맑게 조이를 대하는 소녀와 자애로운 할아버지의 사연 등이 상영시간 146분을 채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의 풍경, 기병대의 전투 방식 등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27일 열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에 최우수작품상과 촬영상, 미술상, 음악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화면이 수려하고, 음악이 빼어나다. '쉰들러 리스트'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오스카 촬영상을 수상한 야누시 카민스키와 영화음악으로 다섯 번이나 오스카를 손에 쥔 존 윌리엄스의 솜씨. 둘 다 스필버그의 오랜 단짝이다.
영국작가 마이클 모퍼고의 동명 소설을 옮겼다. 원작은 2007년 연극으로 공연되어 최우수극본상 등 토니상 5개 부문을 수상했다. 9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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