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끼리 모이면 '오래 할 일은 아니다'라고들 하죠."
주식거래정지 직전상태까지 치달았던 한화의 지연공시논란 이후 기업 공시담당자들이 분주해졌다. 일각에선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공시에 대해 '요리 피하고 조리 피하는 미꾸라지 수법'이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공시 담당자들은 막중한 책임감과 업무위험, 소액주주들의 오해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공시담당자들이 밝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실수에 대한 두려움. 사업보고서, 분기ㆍ반기보고서 등 수십~수백페이지에 이르는 보고서를 만들고 공시할 때는 자칫 숫자 하나 잘못 써서 문제가 생길지 걱정이다. A기업 공시 담당자는 "내 경험은 아니지만 공시담당자의 과실이 아닌데도 회사가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된 데 대해 공시담당자가 책임을 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고 전했다. 공시업무는 '잘해야 본전' '오래 할 일은 아니다'이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
그나마 불성실공시를 2년 안에 세 번 할 경우 상장폐지 시키는 '삼진아웃제'가 2009년 폐지되면서 숨통이 트였지만, 최근 CNK과 한화 사태를 계기로 삼진아웃제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부담이다.
정확한 시일 내에 공시해야 하는 의무도 종종 난관에 봉착한다. 중요한 경영상 결정에 대해서는 대부분 당일 공시를 해야 하는데 이사회가 오후에 끝나거나 하는 경우 공시 서식 작성과 사내 검토, 결재 등을 거쳐 공시까지 하는 데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 B기업 공시담당자는 "일부 주주들이 '올빼미 공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데 사실 공시 담당자에게는 기한 준수가 일차 목표이기 때문에 해당 공시가 미칠 사회적 파장까지 생각해 공시 시각을 조절하는 꾀를 낼 여유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난 3일 장종료 후 한화가 낸 김 회장의 배임혐의 기소 공시의 경우 10개월이나 지연된 늑장공시여서 '의도적인 올빼미 공시'로 볼 소지도 다분해 보인다.
가장 골치 아픈 경우는 공시가 나간 후 애초 의도와 전혀 다른 사회적 파장이 생길 때다. C기업 공시담당자는 "분명 A라는 뜻으로 공시를 했는데 B라는 식으로 와전되어 인터넷 속보매체 등에 보도되고 그 기사가 2차, 3차로 확대 재생산돼 주가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대책이 없다"면서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 신세나 다름없는 공시담당자를 생각하며 한번이라도 더 확인하고 공시 기사를 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