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강렬한 발레의 시간은 때로 일상을 구원한다. 김선희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은 올해의 첫 무대를 자신들의 고갱이만으로 꾸몄다. 각각 고전 발레, 모던 발레로 나뉘어 그 대표적 무대만으로 추려낸 모양새가 마치 경쟁이라도 벌이는 듯하다.
CF나 배경 음악 등으로 어느새 일상 안에 들어온 오페라 아리아가 독무에서 군무까지 다양한 형식의 발레에 얹혀 온다. 김선희발레단의 '오페라 발레 뮤즈'는 이를테면 고전 발레의 하이라이트 모음집이다.
오펜바흐의 '지옥에 간 오르페' 중 '캉캉'이 힘찬 남성성으로, 구노의 '파우스트' 중 '왈츠'는 우아한 여성 군무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벨칸토 오페라의 대명사인 벨리니의 '노르마' 중 '서곡' 역시 군무다.
정교한 2인무와 독무는 대극의 미를 선사한다. 낭만발레의 대명사 '지젤'의 2인무가 서정성의 극치라면 러시아 작곡가 알렉산드로 고르스키의 '돈키호테' 중 2인무는 기교의 전시장이다.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중 '광대 옷을 입어라'는 남성 독무. 흔히 '의상을 입어라'라는 문어투로 번역돼왔다. 푸치니의 '투란도트' 중 유명한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는 여성 독무다. 8분의 5박자와 5음계 등 동양적 색채가 가장 서양적인 춤사위로 풀려 나온다.
동양인 최초로 러시아 마렌스키발레단에 들어가 '해적'의 주인공이 된 김기민(19), 네델란드국립발레단의 최영규(20),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박세은(22), 영국 로열발레단의 한성우(18) 등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들이 무대에 선다. 10일 오후 8시, 11일 오후 5시 예종 석관동 캠퍼스 예술극장. (02)3246-1185
'This Is Modern 3'라는 제목으로 펼쳐지는 유니버설발레단의 올 시즌 개막작은 클래식 발레의 엄정한 틀보다는 상상력과 재미의 세계로 객석을 이끈다. 특히 이번 공연은 공연권을 따내기 어려운 안무가들의 근작들을 한꺼번에 무대에 올린다는 기대로 가득하다.
이어리 킬리안의 '어떤 죽음'은 1991년 모차르트의 서거 200주년 기념작으로 나온 작품이다. 우아하면서도 관능적인 무대가 눈길을 끈다. '여섯 개의 춤' 역시 모차르트의 음악을 쓴다. 당대와 불화했던 모차르트의 고난을 무용수들은 상ㆍ하체가 분리된 듯한 부조리한 몸짓으로 그려낸다.
1987년 윌리엄 포사이드가 안무한 '냉정과 충동'은 직선적인 현대 문명을 9명의 무용수가 긴장된 몸짓으로 엮는다. 직선적인 동작에 물 샐 틈 없는 테크노 음악이 오히려 현대인에게는 호소력을 갖는다고 주장하는 무대다.
오하드 나하린의 'Minus 7'은 무대와 객석의 소통을 주제로 한다. 25명의 무용수가 의자를 이용해 추는 춤, 6명의 여성 무용수가 메트로놈 박자에 맞춰 추는 춤 등 두 주제로 대별된다.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춰 무용수들이 관객을 무대로 끌어 올린 뒤 펼치는 즉흥 무용 대목이 별미다.
이번 무대는 일본(도쿄 파르테논타마극장ㆍ28~29일), 대만(타이페이 국립극장ㆍ4월 14~15일) 등 해외 공연의 성패를 가늠할 자리이기도 하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최근 '심청'과 '지젤'을 일본에 잇달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엄재용(33), 손유희(28) 등 출연. 18일 오후 3ㆍ7시, 19일 오후 3시 서울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 (070)7124-1737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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