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는 매매정지, 상장폐지 등 최악의 사태를 피했지만(한국일보 6일 1ㆍ6면), 한국거래소의 상장폐지 관련규정은 허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거래소가 개선을 약속한 것과는 별개로 일관성 없는 규정적용이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6일 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에서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하는 심사기준은 '임원의 일정규모(대규모 법인 2.5%, 일반법인 5%) 이상 횡령 또는 배임의 혐의 발생 후'다. 대주주가 횡령이나 배임 혐의로 검찰기소만 돼도 상장폐지 심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
심사단계는 이렇다. 해당 기업이 관련공시를 하면 거래소는 매매를 정지시키고, 실무진을 꾸려 상장폐지실질심사위원회에 올릴지 말지를 15일 내(추가로 15일 연장 가능)에 확정해야 한다. 이 기간 실무진은 해당 기업의 영업 계속성, 재무 건전성, 경영 투명성, 공익 및 투자자 보호 등에 대한 조사를 거쳐 종합보고서를 작성하게 된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외부위원이 주축이 된 위원회를 열어 상장폐지 여부를 최종 결정하게 된다.
즉 규정상, 혐의 정보 공시 및 매매정지(1단계)→실무진의 종합심사(2단계)→위원회 최종 결정(3단계)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거래소 관계자는 "규정 자체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규정이 적용되는 현실은 크게 달랐다. 한화의 경우 금요일 장이 끝난 후 공시를 해 다음주 월요일부터 매매정지가 되야 했지만(1단계), 거래소는 주말을 틈타 득달같이 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면죄부(2단계)를 안겼다.
종합심사 기간이 '15일 내'라 규정상 문제는 없지만, 주말 이틀은 세부항목을 들여다볼 만큼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비슷한 사안을 조사하느라 2개월 가량 주식거래가 정지된 보해양조, 2주간 매매가 이뤄지지 않은 마니커 등과 비교하면 한화에 대한 결정은 이례적이다.
게다가 조사항목에 빠져나갈 구멍도 많다. 거래소 관계자는 "한화는 재무구조가 좋고, 내부 구조개선 부문도 내부통제를 강화하겠다는 다짐이 있었기에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그 정도가 심사대상 제외 기준이라면 대부분 대기업들은 대주주 횡령 혐의가 있더라도 위원회까지 갈 일이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상장규정은 2009년 코스닥시장에 먼저 시행돼 부실기업 정리에 탁월한 공을 세우면서, 지난해 4월 유가증권시장(이전엔 확정판결 후)에도 도입됐다. 실효성을 검증 받은데다, 코스닥 퇴출 기업들이 유가증권시장으로 옮겨오는 것(풍선효과)을 차단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하지만 코스닥 중소기업에는 엄격하던 거래소 잣대가 한화 같은 유가증권시장 상장 대기업 앞에선 제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재계 등에선 당초 매매정지 심사 기준 자체가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혐의 발생'이 아니라 '확정판결' 이후에 제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래소 관계자는 "검찰이 기소한 건 풍문과 다르고, 이전 법원 판결을 따져봐도 선제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하는 게 맞다"고 반박했다.
한화의 늑장공시도 짚고 넘어갈 대목이다. 현재 공시 지연은 1주일을 넘기면 기간이 아무리 늘어도 벌점이 똑 같다. 거래소 관계자는 "한화처럼 고의적이고 지속적으로 은폐할 경우 벌점을 더 부과하고, 대표이사 등 경영진을 상대로 과징금 부과나 해임요구 등 직접적인 책임을 묻는 방안을 검토해 금융당국에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사후약방문이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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