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MBC 여기자가 트위터의'나와라 정봉주'비키니 시위에 가담해 뉴스거리가 됐다.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유포죄로 징역형을 받은 정치인을 석방하라고 외치는 것은 자유다. 이게 비키니 소동으로 번진 발단은 나꼼수가 정봉주의'주체할 수 없는 성욕'과'성욕 감퇴제 복용'을 떠들면서, 그러니 비키니 사진을 보내도 된다고 여기자 말대로 찧고 까분 것이다. 스스로 개념 넘치는 무리가 세상을 조롱하는 방식이다.
그'디지털 민주주의'에 감동한 듯한 여기자는 나꼼수가 과도하게 욕 먹는 게 안쓰러워 나섰다고 한다. 온갖 요상한 일이 많은 세상에, 가슴이 터지든 쪼그라들든 비키니 차림 시위가 대수로울 건 없다. 공지영이"여성 성징을 드러낸 석방운동은 불쾌하다"며 나꼼수의 사과를 요구한 것은 애매하지만, 저들끼리 시비를 가릴 일이다.
그보다 여기자가 인터뷰에서 대법원 판결을 내놓고 비판하면서 "트위터 팔로워를 늘리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고 말한 것이 눈길을 끈다. 그는 "정봉주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 받으면서 실형까지 받게 됐다. 언론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국에 사법부가 실형으로 집어넣는 행태의 과도함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말했다. 뉴스데스크 팩트체커(fact checker)노릇을 한다는 언론인의 인식 수준이 이 정도인가 싶다.
공직선거법의 주된 보호법익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공정 선거, 공정한 경쟁이다.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와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거가 이뤄지도록 정당 후보 공무원 등의 불공정 경쟁, 부정 행위를 막는 게 목적이다. 경쟁 후보에 관한 허위사실 유포를 엄하게 다스리는 이유다. 다수 유권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방해하는 것은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보다 죄가 무겁다.
표현의 자유가 헌법적 기본권이라고 아무데나 들이대는 건 유치하다. 게다가 총선 대선 정국에서는 공정 선거가 가장 중요하다. 헌법 질서에 관한 무지를 토대로'사법부의 행태'를 비난하는 건 무모한 만용이다. 그에 비하면, 비키니 몸매 공개는 용기랄 것도 없다.
트위터 팔로워를 늘리고 싶었다는 솔직한 토로는 이해한다. 아이돌 스타와 작가 이외수가 100만 팔로워를 거느리고 진보논객 진중권이 20만이 넘는 것은 그러려니 하더라도, 진보신문의 어설픈 탐사전문 기자를 몇 만 명이 팔로잉 하는 트위터 공간에서는 괜스레 중견 기자의 긍지가 상할 수 있다. 자기 현시적 노출욕구(exhibitionism)가 트위터의 특성인 점에 비춰, 글과 사진이 문신(tatoo)처럼 남는다는 사실을 깜박할 수도 있다.
여기자의 행위가 적절한지, 얻고 잃는 게 무엇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꼼수의 여성 비하와 마초 근성 따위를 논란하는 사이, 판결의 타당성 여부는 관심 밖으로 밀어낸 게 문제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진실성 논란이 그렇듯, 트위터의 정봉주 판결 논란도 법원 편을 든 진중권이 모두 옳다. 무엇보다 사법부 불신을 근거로 구체적 판결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은 올바르다. 두루뭉술하게 사법부 반성을 촉구하는 법학자나 변호사들보다 훨씬 낫다.
우리 사회의 인터넷, 트위터 공간이 유난히 지성 이성 윤리 등과 동떨어진 난장판이 된 데는 언론과 지식인들의 책임이 크다. 온ㆍ오프라인 어디서든 사회적 논쟁을 합리적으로 이끌기는커녕 이기적 편들기에 몰두하거나 점잖은 척 공자 말씀을 되뇌기 일쑤다. 거기에 집단지성이 작동할 여지는 거의 없다. 맹목적 집단정서가 지배할 뿐이다. 페이스 북과 블로그에는 전문적 식견의 합리적 주장도 있지만, 무책임한 언론과 트위터가 합작해 무한 리트윗으로 키우는 유사 진실과 음모론에 묻힌다.
트위터와 나꼼수는 우리 사회의 허구와 위선을 조롱하고 있다. 사법부의 치욕을 즐겨도 좋을 만큼 신뢰받는 사회집단은 드물다. 편협한 이해를 벗어나 공동의 이익을 위한 올바른 토론을 해야 한다. 그게 치유법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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