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엔 조바심이 가득 차 있었다. 자신감 넘치던 지난해 초여름의 얼굴과는 딴판이었다. 지난주 술자리에서 만난 그는 초조해 보였다.
충무로에서 지난 3년 동안 부침이 가장 컸던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윤제균 감독일 것이다. 2009년 그는 '해운대'로 한국영화계에 3년 만의 1,000만 관객 영화를 안겼다. 그의 행보는 이후 거침없었다. 2010년 윤 감독이 제작하고 각색에 참여한 '하모니'는 300만 관객을 넘기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의 또 다른 제작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도 흥행 성적이 나쁘지 않았고, 평단에서 호평을 받았다.
그의 영화사 JK필름의 이름을 내건 영화들이 속속 제작에 들어갔다. 100억원대 블록버스터 두 편의 촬영이 결정됐고, 윤 감독은 '나홀로 집에'의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이 세운 1492픽처스와 한미 합작영화를 추진하게 됐다. 필름 위를 내달리는 기차를 형상화한 JK필름의 로고처럼 윤 감독은 지치지도 않고, 기적을 연신 울리는 듯했다.
시련은 정점에서 찾아왔다. 지난해 여름시장 제패를 꿈꾸며 '퀵'과 '7광구'를 2주 간격으로 내놓았으나 시장은 윤 감독의 인장이 찍힌 영화들을 외면했다. '7광구'는 마무리를 좀 더 한 뒤 관객들에게 보여주겠다며 개봉일 오후에야 극장에 거는 해프닝까지 벌였다. '7광구'의 언론시사를 마치고 황급히 극장을 떠나던 그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JK필름이 지난 설 연휴를 겨냥해 개봉한 '댄싱퀸'이 지난 주말 250만 고지를 넘었다. '부러진 화살'이 일으킨 돌풍에 밀려 기대했던 수치보다는 실망스럽다고 하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흥행 성적이다. '댄싱퀸'은 JK필름의 영화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윤 감독이 각색에 참여한 영화다. 자로 잰듯한 상업영화라는 촌평도 있는데, 대중의 속성을 꿰뚫는 윤 감독의 흥행 감각은 여전하다.
'댄싱퀸'이 안겨준 위안에도 그는 지난해 여름 겪은 '재난'을 씻어내지 못한 듯하다. 금전적 손실이나 명성의 흠집보다 정신적 충격이 그의 발목을 잡는 것 같다. 그는 "나에 대한 대중들의 악플을 내 아들이 보게 될까 겁난다"고 말했다. '윤제균이 망해야 한국영화가 산다'는 극언까지 나돈다니 그의 고통스러운 심정을 알 만도 하다.
충무로의 많은 중견 제작자들은 윤 감독의 건재를 응원한다. 투자에 난항을 겪어온 이명세 감독이 JK필름 울타리 안에서 신작 '미스터K'를 만들게 된 점도 윤 감독의 존재 이유를 대변한다. 충무로엔 "백정의 뇌를 가진 사람"이라는 악평까지 듣고도 꿋꿋하게 할리우드로 진출한 인물이 있다. 윤 감독이 예술적 재능을 부러워하는 박찬욱 감독이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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