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백화점을 찾았다. 오늘의 쇼핑 아이템은 남성용 지갑. 작정하고 들어간 세 곳의 명품 매장에서 그러나 나는 크게 환대 받지 못했다. 혹한의 추위에 껴입은 야상, 부츠, 민낯, 게다가 고가의 여성용 백을 찾는 것도 아니니 어찌 보면 무심한 관심이 당연했을 터.
비싼 만큼 좋은 질인가에 낫처럼 물음표를 던질 만큼 명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나였기에 군말 없이 나는 세 번째 매장에서 제법 맘에 드는 물건을 고를 수 있었다. 카드를 긁으며 매니저가 말했다. "일주일 안에 가져 오셔야 환불 교환 됩니다." "그럼 사진 찍어 보내볼게요. 맘에 안 들면 안 되니까요." 그런데 한사코 두 손으로 X자를 해대는 매니저라니.
"내 값 치른 내 지갑인데 사진도 맘대로 못 찍는 게 말이 돼요?" 그렇다고 즉각 무르는 본보기로 행동하는 양심을 보여줄 만큼 명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나였기에, 결국 로고 박힌 쇼핑백 달랑대며 매장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명품 브랜드들이 줄줄이 값을 인상한다는 소식에, 매장이 북새통을 이룬다는 뉴스를 보며 옷장 속 칸칸마다 모셔져 있는 내 가방들이 떠올랐다. 죽을 때 관에 넣고 갈 것도 아니면서 한 시절 왜 그렇게 사지 못해 안달이었을까. 그나저나 이쯤에서 궁금한 점 하나. 왜 우리나라 여자들은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피하기 바쁘면서 왜 똑같은 가방을 든 사람을 보면 따라 사지 못해 안달인 걸까.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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