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위 메모리반도체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이하 마이크론)의 스티브 애플턴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이 아이다호주 보이지에서 경비행기를 몰다 추락해 사망했다. 마이크론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항해 각각 3위, 5위 업체인 일본 엘피다 및 대만 난야 등과 통합을 추진하던 터라, 시장은 그의 사망이 세계 반도체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애플턴은 3일(현지시간) 아침 혼자 단발엔진인 랜세르 기종의 경비행기를 타고 이륙 후 30~60㎙의 고도로 비행을 하다 지상으로 추락해 숨졌다.
애플턴은 1983년 마이크론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입사, 1991년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쳐 1994년에는 CEO 겸 회장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 경영능력도 뛰어나지만 만능 스포츠맨에 무술, 곡예비행조종사 자격증을 갖고 있을 만큼 미국 내에선 '튀는 CEO'로 평가 받았다. 지난 2004년에도 보이지 사막에서 곡예비행을 하다 추락사고를 당해 폐손상과 척추골절 등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2006년 언론인터뷰에서 "나는 확실히 공격적인 사람"이라며 "사라지듯 죽는 것보다 생생하게 살며 죽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과 인연도 깊다. 지난 2001년 11월말 하이닉스 인수를 위해 극비리에 방한, 성사 직전까지 갔지만 핵심기술 유출을 우려한 정부와 하이닉스 이사회측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마이크론은 한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업체들이 장악한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현재까지 살아남아 있는 유일한 미국 기업. 그만큼 미 IT업계에선 그에 대한 기대가 컸고, 작년 11월엔 반도체산업협회(SIA)가 주는 최고영예의 로버트 N. 노이스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마이크론은 D. 마크 던칸 사장 겸 COO를 임시 CEO로 선임, 경영공백을 최소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세계 반도체시장은 경기부진에 따른 수요감소에도 불구, 생산업체들이 공급량을 줄이지 않음에 따라 D램 가격이 원가 이하로까지 떨어지는 이른바 '치킨게임'이 수년째 지속되고 있는 상황. 애플턴은 정상적 경쟁으론 1위 삼성전자와 2위 하이닉스를 이겨낼 수 없다고 보고 3~5위 업체간 통합을 추진해왔으며, 협상은 상당 수준까지 진전된 상태였다.
마이크론은 또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사용되는 메모리 생산에 집중하는 등 새로운 전략 설명회를 이번 주중 가질 예정이었다.
전문가들은 애플턴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론이 흔들리거나 경영노선에 변화가 오지는 않을 것으로 보지만 통합작업 지연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 시장조사업체인 MKM파트너스의 대니얼 버렌바움 애널리스트는 "협상의 키맨(key man)이 사라진 만큼 속도는 늦춰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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