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참 많은 말들이 넘쳐나고 있다. 최근에 회자되는 단어들만 해도 '소통', '동반성장', '사회 양극화 해소', '협력이익 배분제'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느 당은 당명까지도 바꾸고 있다. 이런 단어들의 뜻과 의도는 알겠으나 이들을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로 실현시킬 것인지는 의문이다. 큰 길 네거리마다 걸려있는 얼굴 나온 커다란 플래카드와 거기에 써져 있는 좋은 말들에서도 같은 질문이 든다.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장기적이고 근본적이며 체계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식의 안 하니만 못한 말들만 떠들고 있을 뿐이다. 신조어를 만들어 내는 것과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키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탠슬리 경이 '생태계'라는 멋진 용어를 처음 소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과학자들은 이 개념을 실제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한참 흘러 레이몬드 린드만 이라는 과학자가 나타나서야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는 미네소타대에서 호수를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해서 박사 학위를 받은 젊은 과학자였다.
미네소타 주는 별명이 '만개의 호수를 가진 땅'이라고 할 정도로 호수가 많은 곳이다. 호수는 보통 흙과 땅으로 둘러싸인 고인 물이기 때문에, 경계가 뚜렷하고 따라서 생태계의 정의에 가장 잘 들어맞는 자연계이다. 물론 린드만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호수의 생태를 연구했다. 그러나 그들의 연구는 주로 호수에 살고 있는 물고기와 식물의 종류 또는 호수물의 온도와 깊이 같은 것에 집중되었을 뿐 하나의 시스템으로 이해하려하지 않았다. 린드만은 호수에 들어오는 태양에너지 양이 얼마인 지, 또 이중 얼마가 일차생산자라고 부르는 조류에게 전달되고, 이후에 작은 동물, 물고기, 세균에게 전달되는지를 정량화했다. 지금은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도 배울 수 있는 먹이사슬이나 에너지 흐름의 개념을 처음 실제로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 선구적인 연구를 수행한 젊은 과학자의 삶은 비극적이었다. 박사학위를 마친 후 자신의 연구 결과를 학술지에 투고했지만, 너무나 선구적인 연구였던 탓에 당대의 내로라하는 호수 생태학자들은 이 논문이 형편없다고 게재를 거절했다. 이 충격 탓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병약했던 린드만은 27살의 나이에 급성 간염으로 사망했다. 지도교수의 강력한 요청으로 그의 사후에야 이 논문이 '생태학'이라는 학술지에 겨우 게재되었다. 당시 기성학자들에 의해 구체적인 자료가 부족하다고 폄하되었던 그의 논문은 이후 생태계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실현시킨 고전적인 논문으로 칭송되고 있다. 그가 없었다면 '생태계'라는 단어는 그냥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린드만의 사례에서 나는 몇 가지 교훈을 얻고자 한다. 첫째 어떤 일에서든지 성공하려면 적절한 대상을 찾아야 한다. 그가 호수가 아니라 다른 복잡한 자연계를 대상으로 했다면 생태계 개념 적용이 어려웠을 것이다. '국민을 위해서' 일하려면 '위할 국민'이 누구인지부터 확실히 해야 한다. 둘째 똑같이 하는 일이라도 남들과는 다른 새로운 각도에서 쳐다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린드만이 그냥 호수의 어류나 식물종만 연구했다면 큰일은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복지'를 제대로 실현하려면 세금 쓸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 셋째 선구적인 일은 당대의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자신의 일을 알아주는 사람이 적더라도 결코 실망할 필요는 없다. 만일 뛰어난 일이라면 언젠가는 세상이 이것을 알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대중의 인기에 휘둘리기 쉽지만, 옳은 일이라면 당장에는 이해하는 사람이 적더라도 수행할 용기가 필요하다. 넷째,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예전에 어느 대통령이 그러지 않았던가, '머리는 빌려도, 건강은 못 빌린다'고.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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