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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하던 대로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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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하던 대로 하자"고?

입력
2012.02.0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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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렸던 세계경제포럼의 제목은 '거대한 전환: 새로운 모델 만들기'였다. 이 '거대한 전환'은 필시 칼 폴라니의 유명한 저서의 제목을 암시하는 것일 터이다. 현존하는 형태의 자본주의가 분명한 위기에 처해 있으며 그 원인은 시장 경제 또한 사회라는 맥락안에서 존재하고 작동하는 것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망각했음에 있으니, 이 점을 근본적으로 다시 성찰해보자는 것이 취지였다고 한다. '새로운 모델 만들기'는 따라서 철두철미한 자유 시장 지상주의에 기반한 현존의 신자유주의적 정치경제 모델에 대한 대안적 모델의 논의가 될 것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나오는 이야기들은 용두사미라는 말도 무색할 정도로 한심한 것들이었다. 기껏 들려오는 이야기라고는 '자선과 기부를 많이 하자'든가 '사람의 재능을 존중하자' 이런 것들이다. 지금까지의 신자유주의가 불평등을 양산하고 사람의 재능을 파괴하는 모델이었음을 무심코 인정했다는 것 말고는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정치경제 모델의 핵심이라 할 조직 및 운영 원리는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그냥 '하던대로 하자'는 이야기인가?

새로운 일은 아니다. 2008년 위기 이후 지금까지의 자본주의 모델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 문제였다. 하지만 막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논의가 벌어지면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그냥 하던대로 하자'는 허탈한 결론이 나오는 것을 한 두 번 본 것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금융 개혁이다. 2009년 초입 영국 런던에서 G20회의를 본격화시켰던 추동력은 세계 금융의 시스템 개혁이 절박하게 시급하다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몇 번의 줄다리기와 옥신각신 끝에 끝내 은행 직원들 보너스 액수조차 건드리지 못하고 지금은 논의 자체가 아예 소멸해 버린 상태이며, G20회의는 이제 사람들의 관심 영역에서 사라져 버렸다. 유럽의 재정 위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파산 상태의 금융 시스템 구제와 산업 경기의 활성화라는 모순된 두 과제 속에서 재정 운영의 원칙 및 국채 시장에 대한 국제적인 협의틀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라는 심각하고 복잡한 논의가 몇 년간 지루하게 오간 끝에 유럽 정상회의가 내린 결정은 '몇 년 안에 일정 수준 이하로 정부 부채 감축'이라는 낯익은 위기 이전 시절의 규칙이다. 한숨이 나온다. 언제는 아니었던가.

2008년 위기 이후로 '자본주의의 미래', '금융 시스템의 위기', '주주가치 경영의 파산' 등 굵직한 화두들이 던져졌지만 지금까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나타난 변화는 없다. 현존하는 신자유주의 정치경제 모델의 위기는 이제 전면화되었다. 이 위기에 용감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지난 30년간 마치 신의 명령처럼 신성하게 여겨져온 명제, '금융 자본 시장은 완벽한 존재'이므로 여기에 지구 위 인간 세상의 모든 경제 활동의 조정을 배타적으로 일임해야 한다는 명제 자체에 대해 새롭게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지난 30년간의 상식에서 볼 때 분명히 '신성모독'이므로 차마 혀가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심각한 위기가 확인될 때마다 모두 우르르 모여 토론을 벌이지만, 변죽만 울리는 답답한 논의 끝에 결국 나오는 결론은 그냥 '하던대로 하자'이다.

그래서 화급한 위기의 화두가 하나씩 터져 나올 때마다 확인되는 것이라고는 현재 세계의 정치경제 체제를 이끄는 엘리트 집단들이 얼마나 지적으로 빈곤하며 얼마나 정책적으로 화석화되어 있으며 얼마나 정치적으로 무기력한가 뿐이다. 웃지도 울지도 못할 역설 하나는, 이렇게 굵직한 문제만 제기되고 해결의 실마리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줄거리가 반복될 때마다 이것이 사람들의 불안감만 증폭시켜서 오히려 세계적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그 콘서트'의 '비상대책위원회'는 TV에서 볼 때에는 코미디이지만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것을 목격한다면 그로테스크한 부조리극일 수밖에 없다. 사태를 직시할 배짱이 없다면 아예 이야기를 꺼내지도 말 일이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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