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식탁 위에 올려두었던 밤 하나를 딱 소리 나게 깨물었다. 내복 차림으로 자고 있던 내 입 속에 땅콩을 밀어 넣으며 그래야 부스럼이 안 나고 이가 튼튼해진다던 엄마, 그렇게 자다 깨서 칭얼칭얼 신경질을 부리다가도 세수하고 맞는 대보름 밥상만 보면 환해지던 나.
한 상 가득 오물조물 무친 각종 나물에 멥쌀, 찹쌀, 조, 수수, 보리를 기본으로 하되 이것저것 몇 가지를 더 넣은 오곡밥에 구수한 된장국까지…. 나를 깨우던 엄마 손이 새벽 내내 분주하느라고 이리 얼음장 같았구나, 뒤늦게 알아차린 미안함에 고추장을 듬뿍 넣고 밥을 비벼먹다 보면 연이어 벨이 울리곤 했다.
뒷집 철수오빠가 앞집 기승오빠가 엄마 심부름 한답시고 제 집 나물이 든 접시를 쟁반 째 들고 있던 풍경은 이제 온 데 간 데 없고, 마트마다 테이크아웃이 대세 아니겠냐며 데우기만 하면 된다는 오곡밥과 각종 나물이 든 플라스틱 용기의 간편함을 너나없이 자랑하느라 바쁘다.
요즘 젊은 여자들 가운데 봉지쌀을 사 본 이 있을까, 그걸 갓 낳은 애처럼 조심조심 안고 걸어본 이 그 누굴까, 라고 묻던 한 시인의 글을 읽은 적 있다. 내가 좋아하는 먹을거리의 비롯됨과 만들어짐은 전혀 알려고 하지 않은 채 그저 엄마에게 전화나 해대니, 나는 아무래도 소머즈가 내 엄마라는 착각으로 오늘에 이르렀나 보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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