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파나소닉, 샤프 등 일본 제조업을 견인해온 전자업체들이 줄줄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해 일본 열도가 충격에 휩싸였다. 도호쿠(東北) 대지진에 이어 고공행진하고 있는 엔고와 유럽의 재정위기 등으로 적자가 어느 정도 예상은 됐지만 그 같은 우려가 실적 또는 실적예상치로 확인되면서 자존심에 큰 상처가 난 것이다.
산케이(産經)신문은 3일자 1면 머리기사에서 "트리 니트론의 아름다운 이미지로 세계를 매료시킨 소니의 TV사업이 8분기 연속적자를 기록했다"며 "소니는 워크맨과 같은 선진기술을 가진 상품을 만들어내는 능력도 없고 아이폰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애플에도 한참 뒤졌다"고 지적했다.
소니의 추락은 경영실적에서 그대로 확인된다. 소니는 2011년 2~4분기 결산에서 2,200억엔의 적자(순손익 기준)를 낼 것으로 전망됐다. 역대 최악의 적자를 기록한 1994회계연도(2,933억엔)와 2010회계년도(2,599억엔)에 맞먹는 규모다. 분기별로는 8연속, 연도별로는 4연속 적자행진이다.
소니의 대규모 적자는 한국의 삼성전자, LG전자와의 TV 사업에서 패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소니는 2년 전 한국 전자업계와 전쟁을 선언하고 기존 고급형 이미지에서 과감히 탈피, 보급형 TV 양산에 나서기로 했다. 2015년 4,000만대 생산 목표도 내세웠다. 하지만 세계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삼성전자와 손잡고 만든 TV용 액정디스플레이(LCD) 패널 합작공장에서 철수했고 2,300억엔의 손실을 냈다.
새로 취임한 히라이 가즈오 사장은 "TV 사업에서 양보다 수익을 우선하겠다"며 생산목표를 2,000만대로 낮춰 잡았다. 대신 발광다이오드(LED) TV 개발에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사람들의 관심은 소니보다 삼성과 LG에 쏠렸다.
파나소닉의 실적은 더 충격적이다. 지난해 적자가 7,800억엔으로 예상됐는데 이는 정보통신(IT)업계의 거품이 붕괴하던 2002년의 적자 4,277억엔을 훌쩍 넘는 사상 최고치다. 지난해 태국에서 발생한 홍수의 피해가 큰데다 자회사 산요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환차손을 본 탓이다.
이밖에 샤프 2,900억엔, NEC 1,000억엔의 적자가 예상되며 1981년 기업공개 후 단 한번도 적자를 보지 않았던 게임기업체 닌텐도도 650억엔의 적자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제조업계의 적자행진이 지진, 엔고, 유럽 재정위기 등 외부 요인에만 있지 않다는 데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한국의 삼성전자가 지난해 4분기 5조2,000억원대의 사상 최대 규모 영업이익을 내는 등 한국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큰 폭의 흑자를 낸 것을 두고 결국 일본 기업이 경쟁에서 뒤졌기 때문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적자 현상을 극복할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공장폐쇄, 고용축소가 이어지면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지속될 수 밖에 없다.
히라이 가즈오 소니 사장은 "비상한 위기감을 갖고 있다"며 "힘을 결집해 난국을 타개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전자업계가 총붕괴 상태"라며 전자업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다른 언론들도 "세계를 매혹시켰던 일본의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한 물건 만들기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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