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의 백미는 밀실살인이다. 숱한 추리소설가들이 갖가지 밀실 트릭을 이용한 완전범죄를 소설의 소재로 사용해왔다. 그런데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 적이 있다.
9년 전인 2003년 12월 세밑 서울 송파구 거여동 A아파트 7층 박모(당시 31세)씨 집.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34)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부인 박씨가 큰 방에서 얼굴을 치마로 뒤집어 쓴 채 빨랫줄에 목을 매 숨져 있었다. 3살, 1살인 어린 두 자녀도 보자기나 비닐봉지에 질식사한 상태다. 외부 침입 흔적은 없었다. 남편이 들어올 당시 현관문도 잠겨 있었다. 그래서 억지로 문을 따고 들어왔다. 숨진 부인 박씨가 갖고 있던 집 열쇠역시 작은 방의 핸드백 안에 있었다. 창문을 통해 외부에서 침입할 수 있지만 복도 쪽 창문은 닫혀있고 창살도 훼손되지 않았다. 7층인 아파트 구조상 바깥 쪽 창문으로는 스파이더맨이 아닌 이상 드나들 수 없다. 더욱이 외력에 의한 살해라면 숨진 박씨의 저항 흔적이라도 있어야 할 것인데 그런 게 없다. 빨랫줄이 매달린 방문 위틀에도 외력이라고 의심할만한 흔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린 자녀까지 함께 데려갈 정도인데도 박씨는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당시 사건에 관여했던 경찰관계자는 "겉보기로는 분명히 자살이었다. 하지만 막상 자살로 결론지으려니 찝찝한 구석이 있었다"고 말했다. 형사의 직감이었다.
그래서 경찰은 '살인이라면'이라는 전제 하에서 사건을 되짚었다. 자녀까지 살해할 정도면 원한관계이고 박씨를 잘 아는 면식범일 수밖에 없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두고 박씨 주변인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자주 박씨 집에 놀러 오던 여고동창 이모(31)씨를 참고인으로 조사하던 중 담당형사는 이씨의 손등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줄 자국처럼 난 상처가 있었던 것이다. 이씨는 조사과정에서 애써 손등을 감추려는 행동도 보였다. 이씨가 범인이라는 감을 잡은 경찰은 이씨 집을 수색하는 과정에 범행도구도 찾아냈다. 잘려진 페트병이다.
경찰의 추궁에 털어놓은 이씨의 밀실살해트릭은 이렇다. 이씨는 '깜짝쇼'를 준비했다며 치마를 머리에 두르게 한 뒤 박씨를 방문 쪽으로 유도했다. 이씨는 미리 올가미처럼 만들어 방문의 위틀에 걸어둔 빨랫줄로 박씨의 목을 졸랐다. 박씨는 영문도 모르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지렛대로 이용한 위틀에는 페트병을 씌워 자국을 남기지 않았다. 이어 이씨는 박씨의 집 열쇠로 현관문을 잠근 뒤 열쇠를 넣어둔 핸드백을 창문 틈으로 작은 방에 던져두고는 완전범죄를 꿈꾸며 사라졌다. 하지만 손등에 난 줄 모양의 상처가 단서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여고시절 단짝 친구였던 박씨와 이씨는 오랫동안 보지 못하다 2년 전 인터넷 동창모임을 통해 알게 돼 수시로 교류했다. 이 과정에 미혼이었던 이씨는 단란한 가정을 꾸려 살고 있던 박씨에게 질투심을 느껴 범행을 했다고 경찰에 털어놓았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은 "형사 생활 20년 동안 이 사건 외에 밀실살인을 접해본 적이 없다"며 "이씨가 추리소설을 그다지 본 것도 아니라서 끔찍하고도 교묘한 범죄수법을 어떻게 상상해냈는지 지금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