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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 암투병 일본 언론인의 취재기 "암은 불량한 자식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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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 암투병 일본 언론인의 취재기 "암은 불량한 자식같은 것"

입력
2012.02.03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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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

다치바나 다카시 NHK 스페셜 취재팀 지음ㆍ이규원 옮김청어람미디어 발행ㆍ328쪽ㆍ1만8000원

많은 나라에서 암이 사망원인 1위가 된지 오래여서 '스티브 잡스' 급이 아니면 암으로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별로 새삼스럽지 않다. 그런데 2008년 일본은 좀 유별났다. 그 해 폐암으로, 직장암으로,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유명인 3명의 투병생활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그 중 한 사람은 아사히(朝日)신문 기자 출신의 방송 앵커 지쿠시 데쓰야(筑紫哲也)다. 숨지기 1년쯤 전 발병을 안 그는 18년 동안 진행해 온 지상파 뉴스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암 발병을 담담하게 전하며 치료해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항암치료를 받아가며 TV 출연을 했고 숨지기 2개월 전까지 현역 언론인으로 살았다.

생전에 일본 국내에서는 노벨상 유력 후보로 늘 거론됐던 물리학자 도쓰카 요지(戸塚洋二)는 2000년 대장암 수술을 한 뒤 항암 치료를 하며 연구를 계속했다. 그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한 것은 자신의 투병 생활, 이를테면 전이ㆍ확대된 암세포 사진이라든지, 항암제 투여 효과라든지 등을 숨지기 일주일 전까지 낱낱이 블로그에 공개했기 때문이다.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에서 어머니를 고려장 하는 아들 역을 맡았던 배우 오가타 겐(緖形拳)은 간암으로 숨지기 직전까지 드라마에 출연했다. 특히 그는 수술을 받지 않고 약물치료와 식이요법으로 투병생활을 이어와 눈길을 끌었다.

이 주목할 암 투병의 목록에 올려야 할 유명인사가 한 사람 더 있다. 언론인이자 저술가인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ㆍ72)이다. 2007년 방광암이 발병해 수술 받은 그는 자신을 생의 마지막으로 이끌어 갈지도 모를 이 암의 정체를 자세히 알고 싶었다. 왕성한 지적 탐구로 유명한 다치바나는 암 관련 책들을 읽고 세계의 전문가들을 찾아 암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암 연구는 어디까지 진척되어 있는지, 궁극적으로 암은 정복될 수 있는지를 물었고 그 과정을 NHK가 특집방송으로 제작했다.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 는 그 취재 내용과 다치바나의 암 투병기를 묶은 책이다.

다치바나는 암이 발병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를 유전자의 복제오류라고 설명한다.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 60조 개의 세포는 낡은 세포를 새 세포로 바꿔나가는 신진대사를 반복한다. 세포마다 이 같은 복제가 적어도 1경(1조의 만 배) 번 이상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복제오류가 발생해 그것이 축적되면 유전암호의 변이가 발생한다. 그래서 암은, 로버트 와인버거 MIT 교수의 말처럼 산업사회의 산물이 아니라 '다세포생물이 존재한 6억 년 전부터 있었'으며 '다세포동물에게 본질적이고 선천적인 숙명'이다. 최근의 암 연구가 암세포의 유전자 분석에 집중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암과의 전쟁'을 국가 과제로 내걸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연구를 지원해 왔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실제로 암 환자의 생존율이 과거에 비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치바나는 해외 석학들의 입을 빌려 아직 인간은 암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고 지적한다. 배양 접시에 있던 암이나 실험동물의 뱃속에 있는 클론 암이라면 대강 파악했을지 모르지만 실제 인간 몸 안에 있는 암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다. 심지어 암 세포는 어떤 항암제에도 견뎌낼 만큼의 강력한 자기 보호 기능을 갖춘 줄기세포마저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가 얻은 결론은 '인간의 삶 자체가 암을 키우고 있으며 암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이며, 불행하게도 '가까운 미래에 암을 퇴치하는 획기적인 요법이 개발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2개월 정도 연명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예외 없이 강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항암제 투여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 다치바나는 부작용이 심할 경우 연명이라는 항암제의 이점과 삶의 질 저하라는 단점 사이에서 환자는 고민해 봐야 하며, 자신의 경우 재발한다면 '연명보다 삶의 질을 유지하는 쪽을 택할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에게는 '의식을 맑게 유지하는 삶이 꼭 필요'하고 '그냥 목숨만 붙들어 두기 위해서 목돈을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암 환자가 투병에서는 이길 수 없더라도 인생에서는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고 말한다. 책에서 말기암 환자 진료소인 노노하나 진료소를 소개한 것도 그 때문이다.

암은 지독하게 불량한 자식 같은 것이기도 하다. 책에는 암 환자와 대화해서 정신적인 고통을 덜어주는 '암 철학 외래'라는 강좌를 개설한 일본 병리학자 히노 오키오 교수 이야기가 나온다. "암은 치료하자고 들면 죽여 버리면 됩니다. 하지만 죽이지 못할 시기가 옵니다. 자식이 불량소년이 됐다고 죽이겠습니까? '마약만은 안 된다' '이 선까지는 봐주겠다'라고 할 수는 있겠지요.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렇게 공존할 수 있어요." 암은 '적이면서, 자기자신이기' 때문에.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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