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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윤장호 하사를 기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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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윤장호 하사를 기억하십니까

입력
2012.02.0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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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탕! 탕!

진눈깨비가 못다 핀 꽃송이처럼 내리는 회색 하늘에 부모님의 비명 같은 총성소리가 묘역의 얼어붙은 적막을 깨뜨렸다. 아버지의 뜨거운 눈물이 젊은 아들의 영정사진위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특전사의 상징인 검은 베레모를 쓴 채 엷은 미소를 띤, 사진 속 젊은 아들은 말이 없다. 아버지는 장례기간동안 매일 두 세 차례 시신보관실을 찾아 싸늘하게 식은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11년간 떨어져 있어 한 달만이라도 매일 얼굴을 보고 싶었다. 집에 냉동실이라도 만들어놓고 같이 있고 싶다."며 오열했다.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청년, 윤장호. 지금도 그의 미니홈피에 '라덴이형 잡으러 간다'란 굳은 포부와 '갔다 오면 제대'라는 미래에 대한 희망 찬 글귀가 남아 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귀국해 2005년 군에 입대했고 두 차례 해외파병을 지원했다가 떨어진 뒤 세 번째에 성공, 2006년에 아프가니스탄의 다산부대에 파견됐다.

윤 하사는 "영어를 잘하는 내가 통역으로 나라를 돕고 싶다"고 가족들에게 말했다. 부대원에겐 "이번 파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현장감 있는 경험은 앞으로 국제무대를 누비며 펼칠 비즈니스를 하는데 좋은 실전경험이 될 것"이라며 "아직 마치지 못한 경영대학원의 학비도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라고 파병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안타깝게 제대 석 달을 남겨놓고 2007년 2월 27일 미군의 공군기지인 바그람 기지 에서 발생한 자살폭탄테러로 전사했다.

모범병사로 선정돼 상을 받을 예정이었던 2007년 3월 5일, 베트남 전쟁 이후 해외파병 중 처음으로 전사한 고 윤 하사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영원히 잠들었다. 우리 대한민국과 세계평화를 위해 해외 파병 근무를 자원했던 그는 27세의 꽃다운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 당시 윤 하사가 흘렸던 고귀한 피는 5,000만 국민의 가슴 속에 애도의 눈물로 피어났고 몸에 박혔던 무수한 파편은 우리 모두의 처절한 아픔이 되었다.

윤 하사는 뉴욕의 고등학교에서 우수한 학업성적과 적극적인 교내 활동으로 클린턴 대통령상을 받았고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는 쾌유를 빌며 삭발하고 기도했던 효자였다. 부대 동료는 "크리스마스 이브 때 종이로 접어 만든 양말을 전우들의 관물대에 일일이 붙이고 양말에 초코파이 1개씩을 넣어줬던 기억이 난다"며 "어렵고 힘들 때 먼저 다가와 등을 두드려주던 마음 따뜻한 선임병이었다"고 회고했다.

지금도 15개국에 1,400여명의 해외파병 장병들이 세계평화유지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작년 11월 11일 아프가니스탄 재건지원팀(PRT) 30여명이 국립대전현충원을 방문해 바그람으로 떠나기 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에게 참배했다. 재건지원팀 홍 중령은 "아프간 재건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국위 선양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외파병 지원한 한 일병도 "아프간에서 힘들 때마다 가족과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령을 떠올리며 견디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올해는 윤장호 하사가 전사한지 5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일상에 치여 우리는 점점 그를 잊어가고 있다. 그러나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았던 대한민국의 영웅인 윤 하사가 하나뿐인 목숨을 바쳤기에 우리가 눈부신 햇살아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젊은 아들의 영정사진을 애타게 끌어안고 가슴 쳤던 어머니도 기억해야만 한다. 국립대전현충원은 호국영령의 나라사랑정신을 널리 알려 국민통합을 이루고 선제보훈정책을 통해 발전하는 대한민국을 구축하는데 구심점이 될 것이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세계평화와 대한민국의 자유수호를 위해 고생하고 있는 해외파병 장병들의 무사귀환을 빈다.

민병원 국립대전현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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