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3개월여를 맞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드디어 판도라 상자에 손을 댔다. 서울 시내 뉴타운과 정비사업(재개발ㆍ재건축)에는 수백만 시민들의 재산권이 걸려 있다. 서울시와 관할 구청, 중앙정부는 물론 정치권까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런 까닭에 누구도 감히 손을 대지 못했던 사안이다. 시민운동가 출신인 박 시장도 취임 직후 다른 분야에서는 당당히 소신을 드러냈지만 유독 뉴타운과 정비사업에 대해서는 그간 뜻을 밝히지 못했다. 그런 그가 3개월 간의 치열한 토론과 여론 수렴,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뜨거운 감자'를 논쟁의 식탁 위에 올려 놓은 박 시장의 용기는 높이 살만하다.
칼을 빼든 만큼 박 시장은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서울시가 내놓게 될 결과는 뉴타운으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부산ㆍ대구ㆍ광주광역시 같은 다른 대도시들에게 롤 모델이 될 것이다.
말을 돌릴 필요없이 결론부터 말하면, 박 시장은 과감하게 뉴타운과 재개발ㆍ재건축 구역 지정을 해제해야 한다. 이유는 간명하다. 시간을 끌수록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폐해가 커지기 때문이다.
뉴타운과 재개발ㆍ재건축사업은 본래 낙후된 도시 주거 여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도시 재생 정책이었다. 하지만 완공됐거나 추진 중인 1,300곳의 뉴타운과 정비사업 대부분은 재산 부풀리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토지 용적률을 더 받아 지은 일반분양분 아파트를 판 돈으로, 자신의 노후한 아파트나 단독주택ㆍ빌라를 고층의 새 아파트로 업그레이드 해 재산 가치를 높이겠다는 목적이었다. 정치권과 자치단체장은 표를 얻기 위해 선심성 구역 지역을 남발했다.
지난 10여년 부동산 활황기에는 이 같은 집값 뻥튀기가 가능했다. 하지만 국내 주택ㆍ토지 등 실물 부동산 자산 가치가 기형적으로 치솟은 현 상황에서 뉴타운과 정비사업은 절대 돈 되는 사업이 아니다. 수익성이 떨어진 상태에서 진행되는 각종 뉴타운이나 정비사업은 해당 지역에서 거주하는 세입자나 장사를 해온 영세 임대 상인들을 더 가혹한 환경으로 몰아갈 수밖에 없다. 살 곳을 잃은 세입자가 늘어나 제2의 용산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토지나 주택 소유자들도 챙길 게 별로 없다. 수익성 하락으로 사업이 장기간 지연되거나 추가 분담금이 늘어나면 전 재산을 집에 쏟아 부은 중산층의 몰락은 필연적이다. 실제 10여년 이상 사업 진행이 안되고 있는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이 서울 시내에는 수두룩하다. 이제 뉴타운이나 재개발ㆍ재건축사업은 조합원, 세입자ㆍ상인, 지자체 모두 '손해를 보는 게임'임이 분명하다.
서울시가 뉴타운 지정을 해제할 경우 엄청난 반발과 피해 보상 요구가 쇄도할 것이다. 지난달 30일 발표 이후 재건축 조합이나 추진위들은 반발하거나 보상 기대치를 높이는 반면, 정부는 다른 민간 개발사업과의 형평성을 들며 매몰비용 부담을 거부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매몰비용 문제는 먼저 정부와 해당 지자체가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특히 그간 뉴타운이나 정비사업을 추진한 정치인, 자치단체장, 건설사, 조합장 등의 책임 소재를 철저히 따져 그들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는 절차가 우선돼야 한다. 그 이후에 지자체나 정부의 매몰비용 분담 여부를 생각해 볼 문제다. 그래야 도적적 해이 논란을 가라앉힐 수 있다.
당분간 베일에 가려져 있을 것 같던 뉴타운과 정비사업 지정 해제 문제가 공개적으로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이번 기회를 왜곡되어온 국내 주택시장을 바로 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썩어가는 환부를 도려내지 않으면 향후 더 큰 화를 입게 된다. 박 시장의 단호한 결단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송영웅 사회부 차장 heros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