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자산운용은 지난달 26일 '삼바라틴아메리카펀드'를 '삼바브라질포커스펀드'로 변경하는 내용의 수익자총회를 열었다. 설정액이 21억원에 불과해 시장 퇴출 대상이지만, 설정(2008년5월) 이후 누적 수익률이 -30%인 터라 지금 없앴다가는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칠 것이 뻔해 궁여지책을 내놓은 것이다.
금융당국이 무분별하게 난립한 펀드들을 정리하겠다며 '자투리펀드'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다. 펀드 퇴출의 권한은 자산운용사에 있지만 이들에게 슈퍼 갑(甲)인 은행ㆍ증권사 등 판매사가 고객 민원을 우려해 정리에 비협조적이기 때문이다.
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으로 설정액 50억원 미만 펀드는 1,007개로 전체 공모펀드(2,527개)의 39.8%에 이른다. 금융 당국은 이중에서도 ▦설정 후 1년 시점의 설정액이 50억원 미만이거나 ▦설정 1년 이후 한달 이상 지속적으로 50억원 미만인 소규모펀드를 정리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2년 전 관련 시행령을 고쳐 이런 펀드에 대해서는 당국 허가 없이 업계가 자율적으로 정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소규모 펀드는 규모가 작아 분산투자가 어렵고, 상대적으로 관리도 소홀해지기 때문에 효율적인 운용이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금융위원회는 소규모펀드 비율을 2014년까지 10%로 낮추기로 하고, 이를 따르지 않은 자산운용사는 신규펀드를 출시하지 못하도록 불이익을 줄 방침이다.
하지만 자산운용사들은 "업계 사슬 구조를 무시한 처사"라고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한 운용사의 펀드 정리 담당자는 "펀드 설정과 해지가 제도상으로는 우리 권한이지만, 실제 결정권은 판매사인 은행과 증권사가 쥐고 있다"며 "특히 마이너스 수익률이 수두룩한 해외 펀드들의 경우는 운용사의 펀드 해지로 손해가 확정되면 고객항의가 은행ㆍ증권사로 쏟아질 것을 우려해 판매사들이 없애지 말라고 하는 통에 청산은 꿈도 못 꾸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소규모 펀드를 취급하는 판매사가 5개 이상이면, 일일이 설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규 펀드 중에서도 자투리펀드가 속출하고 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출시된 공모펀드는 국내외를 합쳐 총 852개다. 이중 설정액 50억원 미만 소규모펀드는 614개(72.1%)에 이른다. 설정액이 1억원 미만인 펀드도 277개(32.5%)나 됐다. 청산해야 할 펀드가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신규 펀드들 마저 성적이 안 좋은 것이다.
김용희 현대증권 펀드리서치 팀장은 "자투리 펀드 축소정책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폐지에 집중하기 보다는 비슷한 펀드끼리 묶어 운용을 개선하는 관리형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며 "운용사들이 반짝 유행을 좇아 성급히 펀드를 내놓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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