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전 서울 모 호텔에서 열린 하나금융지주 경영발전보상위원회(경발위) 회의. 김승유(69) 회장의 연임 여부 및 후임을 논의하기 위한 첫 자리였다. 회의 참석자는 김 회장과 사외이사 4명. 의견은 정확히 1대 4로 갈렸다. 3월 주주총회에서 물러나겠다는 김 회장, 그리고 1년만 회장 자리를 더 맡아달라는 사외이사들의 팽팽한 대립이었다.
금융계 최장수 최고경영자(CEO)인 김 회장의 거취가 뜨거운 관심사다. 당사자인 김 회장은 "이제 할 만큼 했으니 쉬고 싶다"고 누누이 밝혔지만, 하나금융 내부의 만류도 만만찮다. 훌훌 털고 퇴진하자니 외환은행 인수로 내부 결속이 중요한 시점에 리더십의 부재가 아쉽고, 그렇다고 연임을 하자니 자칫 15년째 CEO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 회장의 '노욕(老慾)'으로 비춰질 게 부담스럽다. 현재로선 김 회장의 결심을 뒤집기가 쉽잖아 보이지만, 결론을 예단할 수는 없어 보인다.
김 회장의 퇴진 의지는 확고하다. 김 회장은 경발위 회의에서도 3월 주총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김 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거취 문제에 대해선 지금까지 충분히 이야기했다. 모든 것을 경발위에 일임했다"고 말했다. 하나금융 고위관계자도 "김 회장의 뜻이 워낙 강해 꺾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고 전했다.
하지만 사외이사들도 끝까지 설득 작업을 계속한다는 입장이다. 한 사외이사는 "김 회장의 사임 의사가 완강하긴 하지만 우리도 아주 강력하게 1년 연임을 요청했다"며 "이제 막 외환은행이 인수된 상황에서 조직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앞으로 설득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사외이사 역시 "과연 어떤 것이 조직을 위하는 것인지, 그러면서도 김 회장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 방안이 무엇인지 모색해 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후임 회장 후보로 4~5명의 후보군을 압축한 상태. 김 회장은 일단 후보군에 넣지 않되 향후 설득에 성공할 경우 다시 포함시키기로 했다. 김 회장 설득에 끝내 실패할 경우 고문 등으로 추대하는 방안도 추후 검토할 계획이다. 일각에선 후임 선정까지 김 회장이 3~6개월이라도 연임하는 대안을 제시하지만, 오히려 조직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반대가 더 많은 실정이다.
김 회장 연임 여부에 또 하나 중요한 변수는 외환은행 노조의 반응이지만, 노조 측도 김 회장 연임에 반대하지는 않는다는 의사를 일부 내비친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계 관계자는 "새 회장이 들어서는 것보다는 기존 회장과 대화를 하는 것이 노조 입장에서도 더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김 회장의 연임을 바라는 내부 반응과 달리 하나금융 외부의 시각은 부정적이다. 당장은 조직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자칫 향후 경영권 분쟁 등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해 준 금융당국 역시 김 회장의 연임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금융계 고위 인사는 "금융계 '4대 천황'으로 분류되는 김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친분이 두텁기 때문에 금융당국으로선 자칫 외환은행 인수 승인이 특혜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고 해석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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