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군사정부의 권력 이양을 둘러싼 군부와 시위대의 대립이 그라피티(벽이나 화면에 스프레이 페인트 등으로 낙서처럼 그리는 그림)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군부에 퇴진을 요구하는 수단으로 그라피티를 적극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시절 무채색 일색이던 이집트가 온통 그림으로 뒤덮였다고 AP통신이 29일 보도했다.
지난해 카이로의 한 다리 밑에는 탱크가 소년을 겨냥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청년들의 민주화 열망을 군부가 위협한다는 메시지의 이 그림을 군부 지지자들이 검은 스프레이로 지우자 시체를 먹는 군부 지도자를 묘사한 그림이 그 위에 다시 그려졌다. 지난해 시위에서 시위자들의 눈만 겨냥해 다수의 실명자를 낸 눈 저격수의 얼굴도 한때 그라피티 작가들의 인기 소재였다. 그의 얼굴이 그라피티에 공개되자 시민들 사이에서는 "저격수를 잡아 처벌하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인터넷이 덜 발달한 이집트에서 그라피티는 일종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서 사회 고발 및 여론 형성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라피티 작가들은 건물 벽과 다리, 보도를 캔버스 삼아 군부와 그의 꼭두각시인 국영 언론을 비웃고 시위 중 사망한 운동가들의 얼굴을 그려 시민들의 분노를 일으킨다.
그라피티 작가 카림 구다는 그라피티를 '거리의 메시지'라고 부르며 "인터넷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모든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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