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박희태 후보 캠프 측에 문병욱(60) 라미드그룹(옛 썬앤문그룹) 회장의 자금 수천만원이 입금됐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서초동 단골손님'인 썬앤문그룹과 문 회장이 또 다시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박희태 국회의장과 문 회장 측은 "소송 수임료로 돈 거래를 했을 뿐 경선 자금과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검찰은 라미드그룹이 변호사 수임료를 위장해 박 의장 측에 불법 정치자금을 건넸는지 살펴보기 위해 30일 문 회장을 소환 조사한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캠프 쪽에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2003년 검찰 수사를 받았던 문 회장은 검찰과의 질긴 인연을 이어가게 됐다. 2003년 사건은 문 회장이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이전까지 호텔레저업계의 중견기업 대표 정도로 알려졌던 문 회장은 당시 여야 캠프에 억대의 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치권과의 끈끈한 인맥이 조명받았다.
문 회장은 특히 PK 출신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4년 후배라는 점이 부각되며 '참여정부의 후원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는 2002년 대선 직전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1억원, 신상우 전 의원에게 2,000만원, 여택수 전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에게 3,000만원 등 노무현 후보 캠프에 1억5,000만원의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그는 또 한나라당 측에도 2억원의 불법 자금을 전달한 사실이 확인돼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됐다.
문 회장은 2008년에도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그는 거래처로부터 허위 세금계산서를 받아 공사대금을 지급한 것처럼 꾸미고 계열사 호텔의 유흥주점 종업원에게 봉사료를 준 것처럼 장부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128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그는 이외에도 크고 작은 검찰 수사와 국세청 세무조사로 각종 구설에 올랐다.
검찰청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면서 체면을 구겼지만 문 회장은 업계에서는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통했다. 현재 라미드그룹은 대형 호텔 4곳과 골프장 1곳을 운영한다. 1970~80년대 목욕탕 운영을 통해 부를 일군 문 회장은 서울 빅토리아관광호텔과 이천 미란다호텔을 인수하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현금 동원력이 뛰어나다는 평가 속에 라마다서울호텔과 인천 송도비치호텔, 양평TPC골프장 등 호텔과 레저시설을 잇따라 인수하며 업계의 큰손으로 부상했다.
검찰은 박희태 후보 캠프의 자금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계좌추적을 벌이던 중 2008년 전당대회 직전 문병욱 회장의 돈 수천만원이 박 후보 캠프 쪽으로 흘러들어간 사실을 확인했다.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의 자금 출처와 관련된 검찰 수사 가운데 구체적 정황이 알려진 건 처음이라, 정치권에서는 의미있는 성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 후보 측도 이를 의식했는지 언론보도가 나가자 즉각 해명에 나섰다. 박 의장 측은 "전당대회 5개월여 전인 2008년 2월 중순 라미드그룹 계열사가 관련된 사건에서 다른 변호사와 공동으로 소송을 수임한 일이 있지만, 그 해 7월 전당대회 당시에는 이 그룹으로부터 단 한 푼의 돈을 받은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돈 거래가 있었던 것은 맞지만 합법적인 변호사 수임료였다는 설명이다.
검찰은 그러나 박 의장 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검찰 관계자는 "박 의장 측이 해당 돈 거래를 왜 수임료로 추정하는지 모르겠다. 아무 정황도 없이 압수수색을 하고 문 회장을 불렀겠느냐"며 박 의장 측을 압박할 수 있는 수상한 자금흐름이 포착됐음을 내비쳤다. 이에 따라 향후 검찰 수사의 초점은 선관위에 신고하지 않은 불법 정치자금의 저수지가 확인될지에 모아질 전망이다.
검찰은 다만 문 회장에 대한 조사가 라미드그룹을 타깃으로 한 수사가 아니라 한나라당 전당대회와 관련한 돈 흐름만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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