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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영의 덧차원 일기장] 망원경과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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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영의 덧차원 일기장] 망원경과 언론

입력
2012.01.2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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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 칠레 북부의 아카타마 사막은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곳이다. 너무도 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 지역에는 태평양 연안의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사람이 살지 않는다. 이 아카타마 사막에 위치한 해발 2,635m의파라날 산에는 유럽 남반구 천문대가 운영하는 VLT(Very Large Telescope) 망원경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VLT는 지름이 8.2m에 달하는 주 망원경 4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 망원경에는 각각 칠레의 토착민인 마푸체(Mapuche) 종족의 언어로 각각 안투 (Antuㆍ해), 퀘옌 (Kueyenㆍ달), 멜리팔 (Melipalㆍ남십자성), 그리고 예푼 (Yepunㆍ금성)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VLT의 주 망원경 하나하나는 한 덩어리로는 현재까지 존재하는 가장 큰 거울이다. 거울 표면의 오차는 0.00005mm에 불과한데, 이는 거울이 서울시만한 크기라고 할 때 울퉁불퉁한 부분의 높이가 0.1mm 이내라는 현기증 나는 정밀도다. 거울을 이보다 더 크게 만들면 거울이 움직일 때 거울 자체의 무게로 인해 모양이 변해 버린다. 이 정밀함 덕분에 주 망원경 하나는 맨 눈으로 볼 수 있는 빛보다 40억 분의 1로 희미한 빛을 감지할 수 있으며, 4개의 거울이 함께 작동하면 달에 세워놓은 자동차의 오른쪽과 왼쪽의 헤드라이트를 구별할 수 있다. VLT는 우리 은하 중심의 거대 블랙홀 주위를 도는 별을 관찰하고 지금까지 관측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의 감마선 분출을 발견하는 등 지구상에서 가시광선을 보는 망원경 중 가장 중요한 망원경이다.

VLT와 같은 정밀한 망원경이 까마득히 먼 곳에서 온 별빛을 관측하려면, 희미한 별빛을 지구상의 빛과 공기가 왜곡하고 오염시키지 않도록 공기가 깨끗하고 건조해야하고, 높은 고도에 위치하며, 주변에 인공적인 불빛이 없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갖춘 칠레의 밤하늘은, 하와이의 마우나 키아 산과 함께 오늘날 천문학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곳이다.

조금이라도 왜곡이 적은 사실에 가까이 가고 싶은 과학자들은 사막의 산꼭대기에 이 거대한 망원경을 설치하는 것도 마다치 않는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과, 우리 은하 바깥에 다른 은하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등 우주의 비밀을 밝히는 데 누구보다도 중요한 활약을 했던 미국의 윌슨 산 천문대는 20세기 전반부의 가장 중요한 천문대였지만, 로스앤젤레스에서 불과 수십 km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도시가 성장하면서 증가한 빛 때문에 더 이상 천문대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윌슨 산 천문대는 현역의 천문대라기보다 현대 우주론이 탄생한 역사적인 장소로, 그리고 대중을 위한 교육용 천문대로 여겨지고 있다.

언론은 우리가 사는 사회를 바라보는 망원경, 혹은 현미경이다. 과학자가 희미한 별빛을 망원경으로 보듯이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서 직접 접하지 못한 사실을 볼 것을 기대한다. 그러므로 언론은 무엇보다도 우선 사실을 보여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회가 언론에게 제공하는 특권은 오로지 사실을 보도하기 위한 것이다. 언론이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몇 년 전에 새해를 맞는 제야의 종 행사를 보도하는 방송이 현장의 소리를 지우고 박수 소리를 대신 집어넣어 논란을 빚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올해도 비슷한 일이 다시 일어났다고 한다. 물론 언론이 사실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서 사실조차 볼 수 없다면, 대체 그런 언론은 무슨 필요가 있는가? 별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망원경은 망원경이 아니라 장난감이다.

건국대 물리학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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