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통을 넘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뛰어야 다음 선수가 그 속도로 달릴 수 있다."이명박 대통령이 2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공공기관 워크숍에서 한 말이다. 이 대통령은 정치적 멘토이자 대선 때 최고 실세그룹인 '6인 회의'일원이었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이날 오후 사퇴 기자회견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대형 비리의혹이 잇달아 터지고 측근들이 사퇴하거나 구속되는 상황에서 대통령 스스로 각오를 다짐하고, 느슨해지기 쉬운 공직사회를 다잡기 위해 작심하고 던진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신문에는 최 위원장의 사퇴가 '6인 회의의 몰락' 'MB 멘토의 퇴진''권력 무상'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대문짝만하게 보도됐을 뿐, 대통령의 각오를 다룬 기사는 찾기 힘들었다. 인색한 보도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대통령이 무엇을 하겠다는 것보다는 어떻게 물러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하지만 그게 정치 현실이다.
기업인으로, 또 정치인으로 평생 승승장구한 이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워크숍에서 "임기 말을 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이라 표현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도 했는데, 이 역시 대통령의 심정을 반영하는 듯했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 누구도 임기 마지막 1년을'산을 오르는'자세로 이끌지 못했다.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영향력이 떨어지고 수단도 극히 제한된 때문이다. 이를 거슬러 역류하려 할 경우 집권당의 탈당 요구와 차별화, 야당의 거센 공격 등 역대 대통령이 겪었던 수모와 곤욕이 반복될 뿐이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그 동안 추진한 각종 정책과 국정과제를 마무리하고, 격렬한 대결이 예상되는 총선과 대선을 잘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지난 4년의 국정 운영을 차분히 복기, 잘못된 점을 시정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의미 있다.
특히 가장 큰 비판을 받은 인사에서 쇄신과 탕평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당장 방통위원장 후임 인선부터 지금 언론에 거론되는 주변 인사들의 범주를 넘어 전문적 능력을 갖춘 신선한 인물을 선택하는 변화를 보여줬으면 한다. 임기 말일수록 믿을 수 있는 측근, 이래저래'빚 진'인사들을 쓰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인연에 얽매이는 정치를 떨쳐낼 때 레임덕도 극복하고 민심도 되돌아온다는 점을 인식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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