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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풀뿌리 금융'만이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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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풀뿌리 금융'만이 해법이다

입력
2012.01.2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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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기본으로 돌아가기'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부실이 레버리지와 증권화 과정을 통해 전세계 금융시장으로 확산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초래됐고, 다시 최근 유럽의 재정위기로 이어지면서 1929년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기침체로 실물경제가 충격을 받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강도 높은 금융규제 개혁이 진행 중이거나 또는 일부 완료된 부분도 있다. 이러한 개혁과정에서 미래 금융산업이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렇다면 금융산업의 기본은 무엇이고 또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영국 금융감독원 의장인 터너 경은 2010년 LSE가 발간한 '금융의 미래'라는 보고서에서 금융이 실물경제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지대를 뜯어 간다고 주장했다. 지나치게 비대해진 금융이 실물경제와 인류의 삶에 부담이 되는 상황이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금융위기와 재정위기가 심화되면서 거대 금융자본의 탐욕에 항의하는 월가점령 시위가 전세계로 번지고 있다. 이들은 비록 금융이 1%의 수퍼리치들에게는 효자노릇을 했을지언정 99%의 일반서민들에게는 오히려 짐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배경으로 최근 자본주의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위기 이후 금융산업의 개혁 노력은 미국과 영국의 규제당국이 주도해왔는데, 대표적인 예로 미국의 볼커룰과 영국 독립은행위원회의 비커 보고서를 꼽을 수 있다. 볼커룰은 은행 등 예금수취 금융기관의 고위험ㆍ고수익 투자를 제한하고, 헤지펀드 및 사모펀드 소유와 투자를 금지하며, 대형화 또는 대마불사 억제 등을 주요 내용으로 제안했다. 비커 보고서는 소매은행업에 울타리를 둘러 도매금융업과 구분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금융의 근간을 은행업으로 인식하면서 은행이 본래 기능에 충실하도록 하기 위해 자본금 규제를 강화하고 위험투자 억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융의 중개기능으로 지급결제, 정보창출, 대리감시, 위험관리 등을 꼽을 수 있으나, 서민들로부터 소액예금을 받아 이를 기업의 생산자금으로 제공하는 것이야 말로 금융의 핵심적 중개기능이라 할 것이다. 겸업화가 크게 진전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기능의 확충을 위해 미국과 영국 수준의 개혁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러나 차제에 금융기관들 스스로가 핵심적 중개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로 평가된다. 지난 40여년간 경제의 고속성장으로 소득이 향상되고 재산이 증식된 국민들은 은퇴를 대비해 자신의 소득과 재산을 믿고 맡길 금융상품을 필요로 한다. 특히 한국은 고령화가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장기 금융자산 수요의 대폭 증가가 예상된다. 또한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서 펀드투자 실패와 최근 저축은행 사태 등을 겪으면서 국민들의 안전자산 수요 역시 증가했을 것이다.

한편 은행과 예금수취기관들은 가계로부터 조달한 자금을 중소ㆍ벤처기업에 공급해야 한다. 그래서 차세대 성장산업을 육성하고 경제의 지속성장을 지원하며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책무가 있는 것이다. 일반서민들의 자금을 저렴한 금리로 조달하는 금융기관이 수익성 논리만을 앞세워 담보대출을 고수하는 전략은 설득력이 높지 않다. 옥석을 구분하고 모니터링과 경영자문 등으로 기업을 지원하고 선도해 나가는 금융서비스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서민들로부터 장기 예금을 받고 충분한 금리를 지급하며 중소기업과 차세대 성장산업이 필요로 하는 자금을 장기로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것이야 말로 금융의 기본이다. 이들 두 가지 기본기능을 충족시키는 금융 패러다임을 '풀뿌리 금융'이라 부르기로 하자. 풀뿌리처럼 어디라도 마다하지 않고 퍼져가는 포괄적 금융, 비바람에 시달려도 끈질기게 다시 일어나는 강인한 금융, 화려하지 않지만 대지를 비옥하게 만드는 유용한 금융, '풀뿌리 금융'이 미래 금융산업의 비전이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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