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재개발 현장과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을 담은 사진과 영상이 전시장 벽면을 채웠다. 중앙에 놓인 책상과 또 다른 벽면에는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다. 이상엽, 정택용, 현린, 홍진훤 등 네 명의 사진ㆍ영상 작가들이 참여해 이달 31일까지 서울 관훈동 갤러리나우에서 열리는 '마르크스, 카메라 메고 서울에 오다'의 전시장 풍경이다.
지난 세기의 문제적 지식인을 끌어와 판을 벌인 이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상엽(44)씨다. "그림이나 사진은 그 아래 어떤 설명을 다느냐에 따라 원래 의도가 변질되기 쉽다"고 말하는 그는 "사진에도 보수냐 진보냐, 좌파냐 우파냐의 입장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이번 전시의 키워드는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되새김질이다. 20세기를 풍미하다 구 공산권의 몰락과 함께 폐기처분 되는 듯했던 마르크스의 사상은 전세계적 자본주의 위기로 다시금 주목 받고 있는데, 전시에도 이 같은 흐름이 반영됐다. 중앙에 놓인 가상의 마르크스의 책상에는 지인이나 관람객에게 증정 받은 마르크스 저작물이 쌓여있다.
"마르크스의 눈에 한국이 어떻게 비칠까, 라는 가정 하에 모은 작품이죠. 보통의 전시회에서처럼 사진을 액자에 넣지 않았어요. 아카이브처럼 한국 자본주의를 드러내는 증거적 이미지로 제시한 거죠."
이씨는 서울 금호동, 아현동 등 재개발 지역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출품했다. 2009년부터 '땅'이라는 큰 주제로 진행 중인 시리즈로, 재개발 지역을 시작으로 비무장지대(DMZ), 4대강 사업 현장 등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한국사회에선 땅이라는 화두가 사라지질 않죠. 새만금, DMZ, 4대강 등 공공의 땅에서마저 개발 논리를 찾잖아요. 국민들에게 고루 혜택이 돌아가는 사업인가, 아니면 특별한 소수가 점유하는가는 이미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이씨는 한국의 땅에 얽힌 정치, 경제적 이슈 탐색과는 별개로 1990년대부터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중국 땅에 대한 작업도 이어오고 있다. "다민족 국가인 중국은 고대문명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문명이죠. 중국 전역을 돌아볼 예정이에요. 처음엔 유목민족이 땅에 정착한 후 그들 문화를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관심을 갖다가 지금은 시야를 넓혀 과거와 현재를 보게 되는 거죠." 한번에 2,000㎞를 이동하면서 그들의 흔적을 쫓았다. 8년간 스무 번 넘게 중국 서부지역을 다녀온 뒤 최근 펴낸 사진에세이집 에는, 한두 달 돌아보고 써낸 여느 여행감상문과는 다른 무게감이 있다.
"새로운 곳에 가면 처음엔 다 신기하지만 그런 감정은 금세 휘발돼요. 여러 번 찾으면 비로소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죠. 찍히는 순간은 500분의 1초에 불과하지만, 스쳐 지난 풍경이 아니라 필연적인 풍경을 찍기 위해선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가 찾은 중국 서부의 시골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쳤다. 24개 소수민족이 살아가는 윈난성, 특히 인적이 드문 마을에서 키 큰 차나무와 거대한 계단식 다랑이논을 경작하던 하니족들은 이제 잘 팔리는 보이차와 유기농 작물을 재배한다고 한다. "안타깝죠. 제가 기대했던 모습은 아니지만 최대한 진실에 가깝게 그들의 삶을 기록하려고 애썼습니다."
서부 지역 탐색으로 중국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다음으로 우리 민족의 뿌리이자 다양한 민족들이 났다가 사라진 동북아 지역을 돌아볼 참이다. "올 하반기부터 나가볼 생각이다. 동서남북으로 시작해서 언제건 마칠 거라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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