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들은 당내 경선 시작 후 19번째 TV토론을 치렀다. 그래도 아직 멀었다. 3월 중순까지 CNN 방송 주최 토론 두번, 워싱턴타임스 토론 한번, 레이건 도서관 주최 토론 한번 등 총 네번의 말싸움을 더 거쳐야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본선에서 격돌하기 위해서는 공화당 후보들끼리 무려 스물세번의 치열한 '말의 전쟁'을 치르는 셈이다.
1858년 에이브러햄 링컨과 스티븐 더글러스가 노예제 폐지를 두고 치른 일곱 차례 토론 이후 공개토론은 미 대선의 통과의례로 자리잡았지만, 이번 공화당 경선은 더욱 유별나다. 후보들이 막대한 시간과 정력을 쏟아가면서 TV 토론에 집착하는 이유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TV토론이 유권자들의 뇌리에 자신들의 존재감을 가장 효율적으로 각인시키는 매개체로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26일 분석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신문의 주요 기사를 장식하는 오바마 대통령에 대항해 야당 후보가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 수단은 전국으로 방송되는 TV 토론이다.
일년여에 걸친 TV토론을 거치면서 경선 과정이 기승전결을 갖는 한편의 드라마적인 요소를 갖는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선거전략가인 토드 해리스는 "토론은 연속극이고 리얼리티 쇼이며 스포츠 중계이기도 하다"며 각본 없는 드라마로서의 역동성을 부각했다. 이번에도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처럼 잘 나가다가 토론에서의 말실수로 추락한 사례가 있었다.
군소후보 입장에서 TV토론은 지지율을 역전시킬 절호의 기회다. 경선 초반 지지도가 미미해 고전하다가 토론에서 특유의 독설과 공격적 발언을 앞세워 골수 공화당원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1위를 차지한 뉴트 깅리치가 그렇다.
미 대선에서 TV토론은 다른 일정을 희생해서라도 수십 차례 치러내야 할 최우선 관문이지만 당내 토론에 지금처럼 에너지를 소모하는 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선거 참모인 칼 로브가 대표적인 토론 회의주의자다. 로브는 "후보가 토론에 시간을 쏟으면 자신만의 메시지를 심화하거나 조직력을 강화할 기회를 잃어버린다"고 강조했다.
재주는 후보가 부리고 돈은 방송사가 챙긴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공화당 토론은 4년 전보다 흥행 요소가 더 많아 시청률이 높다. 4년 전 경선에서 전직 주지사 4명, 현직 의원 5명, 전직 뉴욕시장 1명 등 당 주류가 후보군을 이뤄 비교적 점잖은 토론을 치른 것에 비해 이번에는 비주류들이 대거 뛰어 들면서 내전을 연상시키는 치열한 말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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