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로 걸어나가지는 않겠다."
카이스트가 서남표(76)총장의 거취 문제로 다시 술렁이고 있다. 지난해 연이은 학생자살사태의 해결책 이행을 놓고 벌어지는 후폭풍으로 가히 내전을 방불케 한다. 재임 5년 6개월 동안 두 차례'낙마 위기'를 이겨낸 서 총장이 또 고비를 맞고 있는 셈이다.
서 총장이 카이스트에 부임한 것은 2006년 7월. 재임 2년 만에 중도하차한 러플린 총장의 후임이었다. 취임 후 그는 전과목 영어수업과'징벌적'이라 비판 받은 학점에 따른 차등등록금제, 교수 테뉴어 제도 개선 등 개혁작업을 추진했다.
개혁 반발이 거셌지만 4년 임기를 무사히 마쳤다. 2010년 7월 연임도전에 나서면서 첫 위기가 찾아왔다. 일부 교수들이 연임을 반대하고 나섰고 승인권자인 교육과학기술부도 그의 연임을 내켜 하지 않았던 것. 하지만 특유의 뚝심으로 학내ㆍ외 반대를 물리치고 연임에 성공했다. 카이스트 41년 역사상 처음이다.
더 큰 위기는 지난해 초 학업부담을 이기지 못한 학생들이 잇달아 자살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찾아왔다. 개혁 찬성파들도 '도의적 책임'을 요구하는 분위기였다. 교수협의회도 '새로운 리더십의 필요'라는 용어로 완곡하게 용퇴를 촉구했다.
궁지에 몰린 그는 교수협이 중심이 된 혁신비상위원회에 사태해결책 마련의 전권을 부여했고 이들이 제시한 26개안을 모두 수용했다. 단 이사회 선임절차, 평의회 발족 등 이사회 승인이 필요한 3개항은 승인을 받아 시행한다는 전제를 두었는데 이것이 교수협과 대립구도를 심화시켰다.
이사회는 지난해 10월26일 서 총장이 3개항을 보고하자"총장이 개혁안을 무조건 따르겠다고 사인해 문제가 발생했다"며 처리를 유보했다. 이에 교수협은"서 총장이 이사회를 핑계로 혁신위안 이행을 미루고 있다"며 직설적으로 사퇴를 요구했다.
최근에는 서 총장 거취와 관련해 이사회도 가세했다. 오 명(72)이사장이 서 총장에게'명예로운 퇴진'을 권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실은 서 총장이 지난달 20일 이사회에 보낸'자진사퇴 거부'서신에서 밝혀졌다.
서 총장은 서신에서"카이스트는 전임 총장을 중도에 하차시킨 좋지 않은 선례가 있다"며 "카이스트 미래를 위해 이사장의 자진사퇴 요구를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국민이 납득할 만한 사유를 밝히고 법대로 처리하라"며 이사회에 공을 넘겼다.
교수협도 급기야 지난 12일 "지도자 자격을 상실했다"며 '이사회에 드리는 해임촉구 결의문'을 채택, 서 총장을 압박하고 나섰다.
카이스트는 내달 7일 이사충원을 위한 임시 이사회가 예정돼 있다. 현재 16명의 이사 중 3명은 임기 만료, 1명은 사퇴로 4명을 새로 뽑아야 한다. 이에 따라 신임 이사의 성향에 따라 서 총장 거취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정부 당연직 이사 3명과 오 이사장, 신임이사 4명이 뜻을 모으면 해임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관에 카이스트 이사 추천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총장이 추천권을 행사하고 교과부가 승인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 이사장과 교과부가 이사 추천을 할 뜻을 내비쳤고 서 총장은 관례대로 자신이 추천하겠다며 대립하고 있다. 서 총장과 교수협, 이사회가 얽힌 '카이스트 내전'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주목되는 이유다.
글·사진=허택회기자 thhe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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